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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 정말 이쁘네..” 곧 태어날 아들을 딱 한 번이라도 안아보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버틴 시한부 아빠코네티컷주에 사는 헤일리 파르케는 이날 둘째를 낳았다. 계획에 없던 ‘이른 출산’이었다. 파르케의 남편은 암 합병증으로 살날을 며칠 안 남겨둔 시한부 환자였다. 아직 반년은 더 살 수 있을 거라던 의사의 말과 달리, 죽음은 일찍 남편을 찾아왔다. 출산 예정일을 3주 앞두고, 남편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헤일리의 남편은 전직 올스타 야구선수 존 비슨 파르케로 항공회사에 취직했고, 큰아들 브린턴이 생후 6개월이던 2021년 1월 암 진단을 받았다. 매우 희귀한 형태의 암에 직면한 그는 1월에 소프트볼 크기의 종양이 있는 왼쪽 신장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을 받았다. 약 4개월 후 남편이 임상 시험에 참여하면서, 부부는 첫째 아들에게 형제 자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남편의 요청에 따라 두 번째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다. 헤일리는 “남편이 암 말기였기 때문에 첫째 아들을 임신하기 위해 체외 수정(IVF)을 받아 보관한 냉동 배아를 사용하여 4월에 둘째를 임신했습니다.” 라고 전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암치료를 계속하였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자신의 몸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남편은 아내 파르케를 불렀다. “여보,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어” “뭔데?” “딱 한 번만, 당신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안아보고 싶어” 남편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 헤일리는 의료진과 상의 끝에 유도분만을 하기로 결심했다. 유도분만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상태가 매우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의료진은 즉시 유도분만을 멈추고 제왕절개 수술을 진행했다. 그 시각 남편은 죽음의 문턱을 몇 번이나 넘나들며, 필사적으로 삶의 끈을 부여잡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의료진은 중환자실로 아기를 데려가 아빠의 품에 안겨줬다. 기적처럼 그 순간 남편의 생명 신호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마치 이 만남을 위해 힘을 아끼고 있었다는 듯, 남편은 품에서 우는 아기를 꼭 끌어안고 자신의 따뜻한 온기를 전해줬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그 짧았던 만남을 뒤로한 채 남편은 조용히 숨을 거뒀다. 헤일리는 “곧 헤어져야 할 부자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한편으론 아기를 만나려고 죽음과 맞서 싸운 남편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의 이름은 남편의 이름을 그대로 따 존 비슨 파르케라고 지었다. 지금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술실에서 중환자실까지, 이들 가족의 안타까운 만남과 이별을 지켜본 사람 중 눈물을 보이지 않은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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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은 면제해줘야지..” 첫 100일 휴가를 나온 군인이 휴가 기간 동안 노가다 판에서 일할 수 밖에 없던 이유에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준호씨는 고교 때부터 가장역할을 했습니다. 준호씨의 엄마는 준호씨가 9살 때 이혼한 뒤 소식이 끊겼고,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3년 전쯤 집을 나갔습니다. 그래서 준호씨는 학교가 끝나면 패스트푸드점에서 밤 12시까지 청소를 한 뒤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을 돌렸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일식집에서 하루 12시간씩 음식을 날랐고, 2년 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준호씨는 119의 도움을 받아 인근 병원에서 혼자 상을 치렀습니다. 그는 “할아버지께 외식 한번 못 시켜드린 게 가슴 아파 그때 많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안되서 군에 입대하게 된 준호씨는 홀로 남을 할머니를 위해 몇 달간 한푼도 안 쓰고 모은 300만원을 입대하는 날 건넸습니다. 그 돈을 소식도 없던 아버지가 찾아와 가져가버리는 바람에 할머니가 난방이 끊긴 방에서 자다 앓아 누운 것이었습니다. 훈련소에서 훈련 받는 동안에도 그는 할머니 걱정으로 몰래 울다 동기들에게 들켜 놀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백일휴가를 나가자마자 집으로 곧장 달려갔고, 할머니는 난방도 안되는 방에 웅크리고 누워계셨습니다. 준호씨는 휴가기간 동안 노가다판에서 일을 하였고, 번 돈을 모두 할머니께 전해주고 군대로 돌아왔습니다. 군대에 다시 돌아온 후 ‘할머니가 자신이 없는 사이에 돌아가시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더 심해진 준호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이 소속된 1포병여단 예하 쌍호부대(경기도 파주시) 생활관 분대장을 찾아가 사정을 털어놨습니다. 본부 행정보급관 박종건 상사는 “궂은 일 도맡아 하고 예의바른 준호에게 그런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에 모두들 놀랐다”고 말했는데요. 상황이 알려지자 부대 전체가 준호씨를 돕는 데 적극 나섰습니다. 대대장의 지시로 박 상사와 무선반장은 준호씨 집을 찾아가 할머니를 보살폈고, 아버지 주민등록을 말소해 할머니에게 매월 15만원의 정부보조금이 지급되도록 했습니다. 동사무소 사회복지사를 만나 할머니를 잘 돌봐달라는 부탁도 했는데요. 지난 20일에는 부대의 배려로 준호씨가 특별외출을 나와 할머니를 몇 시간이나마 돌볼 수도 있었습니다. 같은 부대 350명의 장병들이 월급을 쪼개 150만원을 모금해 줬지만, 준호씨가 제대할 때까지 할머니의 월세와 생활비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러다 박 상사가 조선일보·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벌이는 ‘우리이웃―62일간의 행복나눔’ 기사를 보고 사연을 적어 보냈고 이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담당 사회복지사와 연계해 20개월간 월세·생활비 등 총 840여만원을 할머니에게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준호씨는 예전에는 남의 도움 받는 것이 싫어 학교 선생님이 용돈을 챙겨줘도 받지 않았지만, 이젠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는데요. “제가 어려울 때 받은 사랑을 나중에 더 어려운 이들에게 보답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현재 부대에서는 의가사제대(依家事除隊) 등 준호씨를 위한 조치를 강구 중이지만, 준호씨는 되도록 만기 제대를 할 생각입니다. “병역의무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언제 제대를 하든 남보다 몇 배 더 열심히 군생활을 할 거예요.” 준호씨는 “일식요리를 밑바닥부터 착실히 배워 요리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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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갔다오고 계속 ‘코 내부’가 가려웠던 소녀, 의사들이 코 속에서 발견한 충격적인 정체여성의 이름은 다니엘라 리바니, 24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신입니다. 그녀는 또래 친구들처럼 홀로 외국으로 여행을 가 현지에서 다른 여행자들과 만나 노는 걸 좋아합니다. 평소 동양권 문화를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던 그녀는 우선 베트남을 여행하기로 결정합니다. 베트남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니엘라는 가벼운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게 되는데요.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사고 이후 코에 계속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죠. 코피가 자주 났기 시작했고, 스코틀랜드로 귀국한 후에도 코피와 가려움은 계속됐습니다. 어느 날 저녁 샤워를 하던 중 그녀는 윗 입술 쪽에 무언가가 끈적거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보통 샤워실에서는 수증기와 열기 때문에 콧구멍이 팽창해서 더 열리게 되는데요. 다니엘라는 이 때문에 코피가 다시 나 입술까지 흐른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에서 나온 핏덩이 치고는 꽤 크고 모양도 이상하다 생각했던 그녀, 거울을 보고는 그만 공포에 숨을 쉴 수조차 없었습니다. 심장이 얼어붙어 버렸죠. 다니엘라는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고 그녀의 코를 검사한 간호사 역시 기겁했는데요. 이 검은 덩어리의 정체는 바로 거대한 거머리였기 때문이죠. 치료실에서 간호사 두 명이 그녀의 몸을 침대에 고정시켰습니다. 급히 호출된 의사가 큰 핀셋을 사용해 그녀의 콧구멍을 벌리고 거머리를 떼어내기 시작했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의사가 거머리를 잡아서 코에서 빼내려 할 때마다 다니엘라는 거머리 흡착력 때문에 코 안쪽이 당기는 느낌을 계속 받았죠. 30분의 사투 끝에 의사는 핀셋 끝으로 거머리를 잡아 빼내었고 다니엘라의 통증도 멈췄습니다. 이 거대한 거머리는 심지어 굉장히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었는데요. 아마 코 속에서 피를 빨아먹으면서 몸집이 훨씬 더 더 커졌을 걸로 추측됐습니다. 사실 아찔한 건 거머리의 크기가 아니라 ‘이것’ 이였는데요. 다니엘라는 가끔 이 거머리가 자기 눈썹 위치까지 올라와 있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의사의 설명에 따르면 다니엘라가 아시아를 여행하는 동안 오염된 식수로 인해 거머리가 신체 내부로 들어가게 됐을 가능성이 크다는데요. 거머리의 길이는 무려 8cm에 육박했고 만약 의사가 제때에 빼내지 않았더라면 결국 다니엘라의 뇌까지 기어올라가 치명적인 뇌손상을 일으켰을 겁니다. 의사는 다니엘라에게 거머리를 집에 갖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다니엘라도 이에 동의하며, 심지어 거머리에게 미스터 컬리라는 이름도 붙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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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일 동안 홀로 우주에서 떠돌던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순간“우주에 있을 때는 지구가 그리웠는데, 지구에 도착하니 우주가 그립군요.” 2005년 10월 11일 오전 5시 9분(모스크바 시각), 카자흐스탄 북부에 있는 아르칼릭 마을 근처 초원지대에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가 내려앉았다. 대기하던 러시아 구조대원이 소유즈의 문을 열자 ‘가장 오랜 시간을 우주에서 보낸’ 세르게이 크리칼레프가 지구에 발을 디뎠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다녀온 이번 우주비행은 크리칼레프의 6번째 비행이었다. 이번 179일 23분의 비행으로 그는 총 803일 9시간 39분의 우주비행기록을 갖게 됐다. 세계에서 가장 긴 비행기록이다. 크리칼레프가 경신하기 전의 기록은 러시아 우주인 세르게이 아브데예프가 갖고 있던 747일이었다. 크리칼레프는 1958년 4월 27일 러시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레닌그라드 공과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수영과 볼링, 산악자전거, 곡예비행을 즐기던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그는 러시아 국립 곡예비행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1983년에는 모스크바 챔피언, 1986년에는 옛 소련 챔피언에 선정됐다. 그는 1988년 옛 소련 우주정거장 ‘미르’(MIR)를 다녀오며 우주에 첫발을 내딛었고, 두 번째 우주비행도 미르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두 번째 미르 방문에서 최장시간 우주비행이란 대기록을 가능하게 한 사건을 겪는다. 바로 우주 미아로 150여일 동안 우주에 방치된 것. 크리칼레프가 미르로 떠난 1991년, 소비에트 연합의 소속 국가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가 독립하며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가 들어섰다. 체제가 바뀌며 러시아는 미르에 우주선을 보낼 자금이 부족해졌고, 1991년 11월 크리칼레프를 지구로 귀환시키려던 계획은 무기한 연기됐다. 우주에 남겨진 크리칼레프는 언제 지구로 돌아갈 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90분마다 지구와 교신하고, 1주일에 2번 러시아 우주센터를 방문한 가족과 통화하며 외로움을 견딜 수 있었다”고 밝혔다. 크리칼레프는 귀환 예정일보다 150여일이 지난 1992년 3월 25일 마침내 지구로 돌아왔다. 이마저도 독일 정부가 2400만 달러를 지원한 덕분이었다. 이 150일이 없었다면 아브데예프의 우주비행 기간인 747일보다 짧으니 옛 소련 붕괴가 대기록 달성에 한몫한 셈이다. 크리칼레프는 레전드(legend) 그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도 여럿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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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하러 들어갔던 여자가 심한 화상을 입게 된 어이없고도 충격적인 이유2016년 일본 도쿄에 살고 있는 20대 메구미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방귀를 잘 뀌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방귀에 그녀는 항상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느날 선 자리에 나간 메구미는 마음에 쏙 드는 남성을 만나게 됐고, 그 남성과 잘해보려고 부푼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도 어김없이 방귀가 나오려고 했고, 남성과 같이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모기를 잡는 척하고 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램과는 달리 방귀 소리는 모두의 귀에 들릴 정도로 매우 크게 났고, 이윽고 냄새까지 엘리베이터에 퍼지자 남자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그렇게 급하게 선 자리는 정리됐고, 보냈던 애프터 신청마저 거부당하는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메구미는 너무 속상했고 “이대로는 살 수 없다”며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 메구미의 예상과는 달리 병원에서는 대장이 아닌 자궁 경부에 이상 세포가 있어서 수시로 방귀가 나오는 것으로 치료도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나을 수 있다는 말에 메구미는 매우 기뻐했고, 당일에 바로 수술을 받게 된다. 수술실에 들어간 메구미는 수술 부위에 마취를 받았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수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나더니, 메구미의 몸을 덮고 있던 수술용 천에 불이 붙었고, 메구미는 심한 화상을 입게 된다. 메구미는 레이저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 부위에 극소마취를 받았는데 마취로 인해 괄약근 주변에 힘이 풀린 나머지 그만 방귀가 나오고 만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메구미의 몸속에 나온 장내 유독 가스가 레이저와 만나 반응하였고 큰 폭발을 일으켰다. 수술을 받던 중 뀐 ‘방귀’ 때문에 화상을 입은 사건은 일본의 전문의들조차 희귀한 일이라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는 이런 사건이 꽤 있는데, 아일랜드에 사는 한 농부는 창고에서 호기심에 방귀에 불을 붙였다가 폭발해서 창고가 폭사한 사례가 있었다. 이 글을 읽고 진짜 방귀에 불이 붙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 있지 않나요? 하지만 진짜 불이 붙을 수도 있으니 절대 따라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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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펫에 ‘파란 잉크’ 흘린 뒤 세상을 떠난 아이, 14년 후 엄마가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오열한 이유어느날 히더의 딸은 바닥에 끈적끈적한 슬라임을 쏟았다. 아이는 자신이 흘린 그 물체를 거의 닦아냈지만.. 엄마는 타일 사이의 흔적도 당장 없애야 한다며 초조해했다. 하지만 그순간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14년전 늦은밤 히더는 당시 2살배기 세쌍둥이와 4살배기 아들을 돌보고 있었다. 기저귀 삶기, 블럭 치우기, 아이들과 놀아주기 등 히더는 전쟁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매분 매초, 아이들을 쫓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날, 그녀는 카펫에서 커다랗고 파란 얼룩을 발견했다. 세쌍둥이 중 한명인 제이콥이 볼펜을 와락 움켜쥐자, 잉크가 터진 것이다. 잉크는 곧 카펫과 아이의 잠옷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히더는 진이 빠지고 좌절했으며 그 감정이 자신을 사로잡게 내버려뒀다. 히더는 “너무 화가나서 아들을 움켜쥐고 화장실로 데려가서 씻겼어요. 남편은 카펫에 묻은 그 얼룩을 세게 문질러 없애려고 했죠.” “눈에서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고,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극도로 화가 났었어요” “스머프처럼 새파래진 제 아들에게가 아니라 그런 것도 막지 못한 저에게요” 라며 울먹였다. 다음날 히더는 카펫 청소업체를 불렀고 얼룩을 지우려고 했지만 잘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 옆을 지나칠 때면 다시금 그 날의 화가 난 감정이 끓어올랐다. 하지만 어느날, 그 얼룩은 더이상 히더에게 중요하지 않게 됐다. 그 일이 있고 다음 달, 잉크를 뿌려 스머프처럼 보였던 아들 제이콥이 암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두번의 고통스러운 슬픈 해가 지나고 아들 제이콥은 끝내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흘렸던 파란 얼룩만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히더는 “파란 얼룩을 볼 때면 계속 제이콥이 생각나요. 그때 아들에게 화를 냈던 제 자신이 너무 밉습니다” “그 파란 얼룩은.. 없애고 싶은 존재가 아닌 저에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14년 뒤 그 고집스러운 얼룩은 끝내 지워지지 않았고 히더는 그 위에 가구를 세워 가렸다. 하지만 청소를 하기 위해 가구를 치울 때 마다 그녀의 숨은 멎는 듯했다. 그리고 그 난장판을 만든 아들이 이젠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찢어졌다. 히더는 인터뷰에서 다른 엄마들에게 간청했다. “엎질러진 음료수, 바닥에 흩뿌려진 과자 부스러기, 쌓인 빨랫감, 그리고 카펫에 남은 얼룩은 그 순간은 힘들게 만들고 가끔은 화나게 만들지만 그것들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운 생명체’들이 남긴것입니다.” +그녀는 그것들을 ‘위장된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내 아들과 단 하루만 더 함께 보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면 저는 제 카펫에 수백만개의 파란얼룩을 남겨도 행복할 것입니다. 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14년 전 아들이 아파서 병원에 있을 당시, 히더는 “제이콥이 집을 난장판을 만들 수 있을 만큼 건강해서 엉망진창이 된 집을 치울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랬습니다”라며 아들이 너무 그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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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마지막 거인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충격적인 이유인류 마지막 거인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충격적인 이유 신장 224cm, 체중 236kg에 달하는 이 남자는 압도적인 피지컬 뿐만 아니라 괴물과도 같은 파워로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는데요. 그는 약 900kg 그러니까 성체 밍크 고래만한 무게를 가볍게 들 수 있었고 건장한 청년 11명보다도 힘이 셌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그를 인류 마지막 거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요. 일류 마지막 거인, 이 놀라운 타이틀의 주인공은 대체 어떤 인물일까요? 앙드레 더 자이언트, 그는 프로 레슬링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1966년 프로 레슬링 업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그는 압도적인 체구 덕분에 단숨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에 레슬러가 흔치 않았던 것도 한몫했지만 그는 큰 몸집에 반해 꽤 좋은 몸놀림을 가지고 있어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무려 15년 가까이 무패 행진을 기록할 만큼 그 실력이 상당했죠. 한편 그는 한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레슬러로 기록되기도 했는데요. 그는 70년대에 40만 달러, 즉 우리 돈으로 5억 원 이상을 연봉으로 받아 기네스의 최고 연봉을 받는 레슬러로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앙드레 더 자이언트,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그의 삶은 불운의 연속이기도 했는데요. “당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거대하다” 물론 앙드레 더 자이언트가 거대한 몸집 덕에 일찍이 프로 레슬러로서 성공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이 거대한 육체로 인해 고통받아야 했는데요. 그의 정확한 병명은 이렇습니다. 손, 발, 턱 등 인체의 말단 부위가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말단비대증과 비정상적으로 키가 커지는 거인병이 그것인데요. 놀랍게도 그의 거인병은 유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앙드레 더 자이언트의 할아버지 또한 거인병을 앓았던 것인데요. 그는 할아버지를 닮아 12살의 나이에 이미 신장 191cm 체중이 90kg이나 나갈 정도로 그 성장 속도가 대단했죠. 한편 성인이 된 이후 그는 폭음과 폭식 때문에 괴로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앙드레 더 자이언트는 그 덩치에 걸맞게 식사량이 엄청났다고 전해지는데요. 그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기까지 기본 89시간을 앉아 있었으며 식당에 가면 모든 메뉴를 한꺼번에 먹어치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경이로울 정도로 술을 즐겼다고 하는데요. 와인을 단숨에 14병이나 해치우는가 하면 한 번에 맥주 118잔을 마시고도 멀쩡했던 일화가 유명하죠. 이와 관련해 동료들은 이런 증언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그가 흥분한 채 주정을 떠는 광경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선뜻 다가가기가 어려웠죠 사실 그는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인간 유형은 아니었는데요. 실제로 그는 사적으로 만나는 친구가 적었으며 설사 상대방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온다 해도 거리를 두는 성격이었다고 하죠. 그런데 그의 이런 성격은 유년 시절과 관련이 있는데요. 어릴 적부터 거대한 덩치 때문에 놀림을 많이 당해서인지 그의 성격은 점점 더 괴팍하게 변해갔다고 전해지죠.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어느 정도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는 심장의 두 개라는 등 이가 82개라는 등 늘 온갖 괴소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또 그런 말들에 시달리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일도 많았는데요. 그는 늘 공연장에 직접 찾아가 공연 관람을 하고 싶어 자신의 거대한 체구를 보고 사람들이 겁을 먹을까 두려워 티켓만 구매하고 나섰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는 평범한 일상생활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는데요. 거대한 손가락이 전화기 다이얼 구멍에 들어가질 않아 그는 연필을 꽂은 채 다이얼을 돌렸어야 했으며 여의치 않은 상황에선 꼭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어야 했다고 전해지죠.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그가 이러한 신체로 인해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비대증과 거인병으로 인해 수술을 하지 않으면 40세를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의사의 경고를 늘 받았었는데요. 하지만 레슬러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계속해서 수술을 미뤘고 결국 그러던 1993년 46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사인은 거인병으로 인한 심장 질환이었는데요. 그는 자신의 마지막 소원으로 이러한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틀 내로 화장을 해줘” 하지만 뜻밖의 이유로 이 유언은 지켜지지 못했는데요. 그의 고향인 프랑스에는 그의 거대한 몸을 수용할 만한 시설이 없었고 결국 미국으로 이송한 뒤에야 화장을 할 수 있었다고 하죠. 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후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한 세계의 스타였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1년 365일 중 300일간 경기를 치르는 빡빡한 스케줄에도 레슬러로서의 경지를 끝까지 지키며 링 위에 모든 것을 바친 전설의 레슬러 ‘왕드레 더 자이언트’ 그는 거인이라는 최고의 무기 혹은 최악의 질환으로 인해 명과 암이 있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다음 생이 있다면 그가 평범해서 더 행복한 그런 삶을 살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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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만에 ‘얼음 속’에서 발견된 소녀의 몸속에서 나온 충격적인 비밀남아메리카 대륙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지대에 해발 6,750m의 유아이야코 화산 정상은 만년설을 제외하면 그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았던 곳입니다. 이곳에 가까스로 도달한 탐사대는 상상하지도 못한 미스터리와 마주하고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탐사대 중 한 명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죠. “아무래도 이상했어요. 자연적으로는 절대 생길 수 없는 구멍 같은 게 눈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그쪽을 자세히 살펴봤는데 사람 머리카락이 보였습니다.” 죽음의 땅에서 탐사대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어린 소녀였죠.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소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잔뜩 웅크린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괜찮니 어서 일어나 봐” 추위에 꽁꽁 얼어버린 소녀를 깨우려고 손을 대는 순간 탐사대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었습니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꽝꽝 언 채로 꼼짝도 하지 않으며 깊은 잠에 빠진 듯한 소녀, 500년 전 얼음 속에 묻힌 소녀 미라였죠. 지난 1999년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을 조사하던 탐사대는 해발 6,700m 지역에서 미라 3구를 발견했습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것은 소녀 미라 2구와 소년 미라 1구였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소녀 미라는 사망 당시 13 ~ 15살이었던 것으로 추정이 됐습니다.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 미라가 된 어린이들은 500년 전에 숨진 것으로 밝혀졌고, 500년 전 남아메리카 전역을 점령했던 잉카 제국의 사람이라는 걸로 추정이 됐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미라의 보존 상태가 소름 끼칠 만큼 완벽했습니다. 피부도 썩지 않았으며 머리카락과 얼굴의 솜털까지 그대로였습니다. 연구진들은 미라의 내부까지 살펴보기 위해 CT 촬영을 진행했다가 더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그 이유는 죽은 지 500년이나 지난 미라의 심장에 혈액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미라에서는 어떤 방부제 성분도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였죠. 전세계적으로 자연 상태에서 미라가 이렇게 완벽하게 보존된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미라는 ‘잉카 얼음 소녀’라고 불리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미라는 금, 은, 조개 껍데기, 깃털 등과 함께 발견됐는데 특히 조개 껍데기는 잉카인들이 신에게 바치던 재물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점을 미루어 봤을 때 어린이들도 제물로 희생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2013년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깜짝 놀랄 만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영국 브레드 포드 대학교의 앤드루 윌슨 박사는 ‘잉카 얼음 소녀’의 머리카락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사 결과 어린이들이 숨진 그 해부터 잉카 제국의 고위층이 즐겨 먹던 고기와 옥수수를 다량으로 섭취한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쉽게 말하면 잉카인들은 제물로 바쳐질 어린이들에게 값비싼 음식을 먹여왔던 것이죠. 그러다 죽기 일주일 전 어린이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질을 억지로 복용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소녀의 머리카락에 그 증거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술과 약물이었습니다. 잉카인들은 제물로 바쳐질 어린이들이 겁에 질리지 않도록 상당히 많은 양의 술과 약물을 먹인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소녀 미라의 머리카락에서 유독 술과 약물 성분이 많이 검출됐다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연구진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이가 많은 소녀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죽을 운명임을 직감한 소녀가 저항하고 불안에 떨자 잉카인들이 그 소녀에게 더 많은 술을 먹이면서 고의로 진정시켰을 것이다.” 윌슨 박사는 연구를 끝마치며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신에게 바치는 재물로 희생된 어린이에게 잉카인들이 어떤 대우를 했는지 알고 나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난 2015년에도 페루 빌카밤바 산맥에서 잉카 제국 어린이들의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돼 충격을 안겼습니다. 잉카 제국에서는 왕이 죽거나 자연재해가 있을 때 카파코차를 진행했습니다. 카파코차는 순수하다고 여겨지는 여성이나 어린이를 제물로 바치는 잉카 문명의 의식이라고 합니다. 잉카인들은 희생당하는 어린이들이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도록 술이나 약을 먹였다고 하는데요. 잉카 소녀 미라가 완벽한 상태로 보존될 수 있었던 명확한 원인과 배경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잉카 제국의 어린이들이 미라가 될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이유에 모두가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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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폭풍에 휩쓸려 10,000m 높이로 치솟은 ‘패러글라이더 여성’의 믿기 힘든 마지막 순간2007년 2월 14일, 35세의 패러글라이딩 챔피언 ‘에바 비시니에르스카’가 200명의 동료 패러글라이더와 함께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의 보라 산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가오는 패러글라이딩 세계 선수권 대회를 위해 훈련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날아오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을 때쯤, 북쪽에서 먹구름이 보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뇌우가 심해졌습니다. 언뜻 보기에 구름의 상황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에바는 심각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고 이륙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녀가 북쪽의 보라 산 능선을 따라가는 동안 처음 19km 정도는 모든 것이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능선이 끝나고 그녀가 하늘 위에 떠 있을 때 폭풍이 그녀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다른 많은 패러글라이더들은 위험을 식별하고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곧바로 폭풍을 피해 땅 아래로 착륙하였습니다. 그런데 패러글라이더 3대가 구름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에바와 그녀의 오스트리아 친구, 그리고 중국인 패러글라이더였습니다. 에바는 구름 아래로 날아가면 빨려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구름을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바람이 너무 쎈 탓인지 그녀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에바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순식간에 날씨가 바뀌었고 작았던 구름들이 모여 거대한 폭풍우 구름을 만들었습니다. 에바는 이 거대한 폭풍우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고, 그녀가 방향을 틀려고 하는 그때, 그녀는 갑자기 상승 기류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녀의 오스트리아 친구는 그녀가 폭풍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고, 즉시 착륙하여 가까운 헛간에 숨었습니다. 폭풍 속에서 여전히 패러글라이더에 묶인 에바는 시속 약 24km의 속도로 상승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에바는 끔찍한 폭풍에서 벗어날 힘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녀는 사방에서 천둥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자신이 폭풍의 눈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에바가 할 수 있는 일은 패러글라이더의 끈을 잡고 폭풍우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에바의 시야에는 벼락이 칠 때를 제외하고는 먹구름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에바는 여전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었고 몸이 점점 추워지고 있었습니다. 에바의 체온이 떨어지면서 그녀는 주체할 수 없이 떨기 시작했고, 이내 정신을 잃고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에바는 10,000m 높이에서 의식을 잃고 날아가고 있었고, 위로 올라갈수록 산소가 부족해져 그녀의 몸을 포함해 모든 것이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몸 대부분이 얼어붙었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 채 최소 40분 동안 폭풍의 눈 속을 활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패러글라이더 날개가 얼음의 무게로 무거워지자 에바는 갑자기 자유 낙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바는 시속 36km의 속도로 땅으로 떨어졌고 여전히 의식이 없었습니다. 기적적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서 에바의 패러글라이더는 기적적으로 완전히 펴졌고, 그 힘이 그녀를 홱 잡아당기자 충격으로 인해 에바가 깨어났습니다. 에바는 의식을 되찾았지만, 그녀는 몸을 거의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브레이크가 그녀의 손에서 미끄러졌고, 에바의 끊임없는 시도 끝에 드디어 브레이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에바는 곧바로 방향을 틀어 농가에서 약 457m 떨어진 탁 트인 들판에 불시착했습니다. 에바는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몸을 웅크린 채 주체할 수 없이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의 전화가 울렸습니다. 지상에서 에바를 찾던 사람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내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입니다. 에바는 손이 얼어붙어서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죽을 힘을 다해 휴대폰의 통화버튼을 눌렀고, 간신히 사람들과 연락이 닿아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에바와 같이 폭풍으로 향했던 중국의 패러글라이더 허중핀(He Zhongpin)은 42세의 나이에 낙뢰로 사망하였고, 76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에바는 뜻밖의 상황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지만 굴하지 않았고 패러글라이딩 훈련을 계속하였고 정확히 6일 후,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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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믿지 않는 사람까지 믿게 만들어버린 기사까지 났던 실제 용 추락 사건용은 먼 옛날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해져 내려오는 환상 속의 동물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용은 같은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차이점들이 많은데요. 외적인 모습 말고도 기록적인 부분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죠. 서양의 드래곤은 주로 전설이나 신화 속에 등장하는 허구인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동양의 용은 마치 실제 존재했던 것인 마냥 세세하고 구체적인 기록이라는 것이 특징인데요. 용과 관련된 기록은 동양 중에서도 특히 한중일 세 나라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중국은 이러한 용기록이 유독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원년 유월 북극 문명전 동쪽들의 용이 떨어졌다. 색깔은 검은색으로 몸 길이가 30m가 넘었다.” “9일 동안 머물다가 떠났는데 이를 기려 그 자리에 사찰을 세웠다. 동성현 경내에 청룡이 추락했는데 목 부위에 상처가 생겨 즉사 길이는 30m에 달했고 몸의 길이와 꼬리의 길이가 같았다.” “꼬리는 납작한 형태로 물고기의 것과 비슷한 비늘이 붙어 있었다. 머리에 두 뿌리 있고 입수염이 달려 있었으며 배에 달린 발의 발톱 사이에는 붉은색 막이 있었다.” “광동 신의연 해변에서 용 한 마리가 떨어져 어민들에게 산채로 맞아 죽었다. 몸 색은 푸르고 배만 붉은 색을 띄었다.” “금단 학궁 앞에 용 한 마리가 잡혔는데 그 비린내가 아주 심하여 코에 거슬렸다. 비닐은 해바라기 부채와 같았다. 용이 롼허 하류에 러팅현 경내에 내려 앉았다.” “마을 주민들이 햇빛을 가려주고 물을 뿌려주니 사흘 후 큰 뇌우를 일으키고는 자리를 떠났다.” “태백 호변에서 용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긴 수염과 높은 두 뿔을 가지고 있었으며 흰 배에 등은 푸르고 지느러미와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몸에는 큼지막한 비늘들이 가득했는데 그 비린내를 몇 리 밖에서도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군중들은 돗자리로 용을 덮어주고 관청에서는 사람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 “같은 날 밤 뇌우가 몰아친 후 용이 사라졌다. 용이 있던 자리에는 깊은 도랑이 하나 남았다.” 이러한 기록들은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실제 중국의 고문원에는 용에 관련된 글들이 아주 많은데요. 이러한 기록은 20세기까지도 이어졌죠. 1934년 7월 중국의 랴오닝성 잉커우시에 40여일간 비가 내린 일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요화강의 수위가 급등하였고 요하 북안 인근에 갈대밭이 물바다가 되었는데요. 비가 그친 후 북안 사람들은 갈대밭에서 동물의 사체가 썩는 듯한 악취를 막게 됩니다. 원인을 찾고자 갈대밭을 해집던 사람들은 그곳에서 살아 있는 용을 발견하였죠. “용은 두 개의 뿔, 황소를 닮은 코, 4개의 발톱을 가지고 있었다. 몸 크기는 커다란 말 정도 되어 보였으며 몸에서 심한 악취가 풍겼다.” “용이 기력이 다해 날지 못하자 사람들은 천막으로 그늘을 만들고 물을 부어주었다. 승려들도 합세하여 용이 기운을 차리는 것을 도왔고 며칠 뒤 큰 비가 한 번 내리더니 용이 날아 사라졌다.” 목격은 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용으로 추정되는 괴생명체가 8월 초 랴오허강 인근의 마을에 다시 나타난 것인데요. “용이 나타나 어선 3척과 공장 건물을 파손하였으며 역에서는 열차를 뒤집어 9명을 숨지게 하였다.” 기운을 차린 용이 자신을 다치게 만든 이들 혹은 마을에 복수를 한 것일까요? 이 정체불명의 동물은 그 뒤로 한 번 더 목격이 되었습니다. “용이 세 번째 발견되었을 때 그것은 갈대밭에 죽은 채로 썩어 있었다. 더위로 인해 살이 모두 문드러져 용골만 남아 있었다.” 용에 대한 기사를 내보낸 중국의 성경일보는 발견된 용골의 모양에 대해서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용의 머리는 마치 가옥과 같은 3판의 뼈로 둘러싸여 있었고, 등뼈의 너비는 3촌 여(약 7~9cm) 척추의 양쪽에는 각각 길이가 5~6촌(약 15~18cm) 정도 되어 보이는 갈비뼈가 붙어 있었다. 꼬리뼈는 수직 판 모양으로 총 28단이었으며 꼬리의 길이만 10m에 달했다. 용이 발견된 곳에는 발톱으로 파낸 듯한 깊은 구덩이가 있었으며 구덩이를 따라 발톱 자국이 남아 있었다. 용골에서는 아직 남아 있는 용의 힘줄도 볼 수 있었다. 성경 일본은 해당 기사를 내보내며 사진까지 하나 실었는데요. 사진 속에는 4~5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괴생명체의 뼈가 찍혀 유독 커다란 머리에는 두 개의 뿔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사진을 포함한 용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자 사람들은 곧장 용을 보기 위해 잉커우로 몰려들었는데요. 이로 인해 1934년 여름 잉커우의 기차표 값이 일시적으로 치솟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죠. 이후 용의 뼈는 잉커우 제6 경찰서에 의해 수거되어 서해안 부두 근처의 공터에 전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전시는 오래가지 못했는데요. 일본과의 전쟁 시기였던 탓에 해당 뼈가 일본 측에 의해 훼손 반출된 것이죠. 현재까지 그 용골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괴생명체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중국의 고문원들에 기록된 것과 같은 낙룡 사건이었을까요? 이에 대해 10년간 용을 연구한 중국의 학자 마샤오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을 신화라고 생각하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10년 간의 연구 결과로 얻은 내 결론은 용은 한때 존재했고 사람들에 의해 신격화된 희귀 동물이라는 것이다. 여러 문헌들 뿐만 아니라 사마천의 사기에도 하대에 용을 기르는 사람을 두고 어룡씨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마샤오싱은 용이 만약 신격화 되었던 희귀 동물이라면 그에 따른 과장 역시 존재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뇌우를 몰고 비를 내렸다는 것도 그러한 요소의 일부분이며 이것은 그저 우연의 일치이거나 용이라는 동물이 좋아하는 날씨 습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였죠. 개구리가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는 것인데요. 기록들을 살펴보면 비늘을 가지고 있고 지느러미와 물 갈기처럼 보이는 것이 존재하며 비린내가 난다는 것으로 보아 물과 아주 친근한 동물임에는 확실해 보이죠. 어쩌면 용은 과거에 정말 존재했던 희귀하고 진귀한 동물이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