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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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하는분들 현관문 함부로 열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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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간판을 바꾸는 모텔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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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 판정을 받은 아내가 죽기 전 꺼낸 ‘마지막 말’에 남편이 눈이 퉁퉁 붓도록 오열한 이유위암 4기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를 이어가던 아내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는 남편 A씨의 사연. 여전히 아내의 죽음이 믿기지 않고, 집에 가면 아내가 있을 것만 같다는 A씨는 천천히 글을 써 내려가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는데요. 지난 2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와이프가 떠난 지 3주가 되는 날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어느 한 사연이 게재됐습니다. A씨는 “3주 전 목요일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라며 “아내는 평소에 소화 기능이 약했다. 저도, 아내도 별 의심을 안 했다. ‘설마 30대 중반에 큰 병이 나겠어’라는 안일한 생각도 했다”고 전했는데요. 이어 “아내는 은연중에 계속 티를 냈던 것 같다. ‘소화제 좀 사다 줘’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아내 앞에서 저는 ‘늦게 뭐 먹지 마’라고 구박이나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아내가 위암 4기로 이미 암세포는 폐, 간까지 전이된 상태였는데요. 항암 치료도 소용이 없었고, 아내가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다고 A씨는 고백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잠시 의식이 돌아온 아내는 A씨에게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이 아빠. 나 가고 나면 우리 ○○랑 잘 살아야 해” “그리고 운동도 좀 하고, 수염도 좀 깎고… 그래야 여자들이 당신 만나주지…” “요즘 여자들이 얼마나 남자 외모를 따지는데~” “나 떠나면, 몇 년 동안만 날 기억해줬다가 잊어줘” 그 말을 들은 A씨는 숨도 못 쉴 만큼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습니다. 겨우 진정하고 대답했는데요. “됐어. 난 ○○만 있으면 돼. 누구보다 예쁘게 키울 거야” “다른 여자를 왜 만나. 난 죽을 때도 여보 사진 끌어안고 죽을 거야” “거기 가서 잘 살고 있어. ○○이 시집가서 잘 사는 것까지만 보고 나도 따라갈게. 그때 보자” “나 잊지 마. 너무 미안한 게 많아서… 그때는 더 잘해줄게” 아내는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었는데요. “그러지 말고~ 마음 맞는 사람 생기면 꼭 놓치지 마. 내가 너무 미안해…” 아내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다음 날 의식이 없어졌고, 그 다음 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A씨는 “아직도 아내가 떠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솔직히 너무 힘들다. 아내 없이 홀로 딸을 키울 생각에 한숨만 나온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하는데…”라고 털어놨습니다. 해당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난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힘내시길 바란다”라며 A씨에게 위로,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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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딸과 함께 매일 땅속에 누워있을 수 밖에 없는 충격적인 이유에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딸과 함께 놀아주는 한 남성, 그런데 이들이 노는 모습이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데요. 중국 쓰촨성에 네이장시에 사는 장리용씨는 딸과 놀아주는 모습을 영상으로 공유했습니다. 딸과 아빠는 여느 다른 아이와 아빠와는 다르게 구덩이 속에서 누워있는데요. 장리용의 딸인 장신레이가 태어난지 2개월 만에 선천성 혈류 장애 질환인 ‘지중해빈열’(탈라세미아)를 진단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적혈구 내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물질인 헤모글로빈이 생산되지 않거나 그 양이 너무 적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데요. 중증이 되면 15세가 되기도 전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수혈이나 오염 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킬레이션 요법을 평생에 걸쳐 받아야 하는데요. 장리용 역시 그런 딸을 살리기 위해 10만 위안(약 1680만원) 이상을 쏟아부었습니다. 지인과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서 돈을 빌려 치료비를 댔지만 별 차도를 보이지 않았는데요. 여러 방법 중 아내 덩민 뱃속의 아이를 통해 제대혈(탯줄혈액) 이식하는 방법까지 생각했으나, 수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시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장리용과 덩민은 더 이상 치료비를 댈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 딸을 놓아주기로 결정하고 딸 신레이의 죽음을 준비하는 데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장리용은 “궁지에게 몰린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 더 이상 돈을 빌릴 곳도 없다”며 “2살 딸 아이가 묻힐 무덤가로 데려와 같이 놀면서 익숙해지게 하는 일 외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매일 같이 딸과 함께 이곳을 동행하는 것”이라며 딸이 무덤을 편안하게 느끼도록, 죽는 순간이 다가오면 너무 두려워하지 않고 편히 잠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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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어머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든 요리에 딸이 오열한 이유미즈키 씨의 어머니는 5년 전, 갑자기 쓰러져 그대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엄마가 쓰러지신 그날 만들어두셨던 마지막 요리는 미즈키씨를 슬프게했습니다. 5년 전 스무 살의 나이로 대학생이었던 미즈키 씨는 아직도 마지막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딸, 오늘은 저녁 반찬 뭐 먹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고기조림!” 그날 저녁 엄마가 쓰러지셨고,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아빠는 다른 나라로 출장을 가 계셨던 상황이었는데요. 밤새 혼자 엄마 곁을 지키던 딸은 다음 날 아침 집에 짐을 챙기러 잠시 들렀다가 고기조림이 든 냄비를 보고 그 자리에서 오열했습니다. 결국 엄마는 돌아가셨고, 엄마의 마지막 요리인 고기조림은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5년이 지난 상태였습니다. 5년이 지났고 이제야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른 딸은 엄마의 마지막 요리를 먹어보고 싶었는데요. 이 같은 의뢰를 받은 방송 제작진은 맛은 제쳐두고, 일단 요리를 먹어도 되는지 아닌지를 살피기 위해 도쿄 농업 대학의 전문가를 찾아갔습니다. 생명과학부 교수는 해당 고기조림을 본 뒤 식중독균 유입 가능성이 있다고 염려된다는 소견을 밝혔고, 시료 채취 검사를 거쳐 확인 과정에 들어갔는데요. “일단은 먹을 수 있습니다. 다만 미생물의 위험성이 아예 없지는 않기 때문에 섭씨 100도 이상으로 가열해서 일부만 먹는 정도라면 위험성을 상당히 줄일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배가 아파질 수도 있지만요…” 답변을 들은 미즈키 씨와 아빠는 먹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에 방송 제작진은 요리사를 초빙했고, 사연을 들은 요리사는 고기조림을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되돌리는 작업에 도전했습니다. 5년의 세월을 거쳐 밀폐 용기에서 다시 나온 엄마의 마지막 요리. 요리사는 일단 전자레인지로 해동한 다음, 고기와 육수를 분리했습니다. 이후 100도 이상으로 가열하기 위해 압력 냄비를 사용했습니다. 여기에 엄마가 만드신 맛은 바꾸지 않고 오래 묵은 냉동실 냄새만 제거하기 위해 파와 생강만 살짝 넣었습니다. 요리사의 손에서 재탄생한 엄마의 고기조림. 고기조림을 한입 먹어본 미즈키 씨는 “엄마가 만든 그 맛 그대로”라며 울먹였다. 그러면서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는데요. 옆에 있던 미즈키 씨의 아빠도 눈물을 훔쳤고, 요리를 되살려낸 요리사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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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엄마가 된 친구에게 ‘이것’ 선물했더니 친구가 말없이 10분을 펑펑 운 이유A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3년 전에 결혼해 18개월 된 아기를 키우고 있다”고 입을 열었는데요. 이어 “그 친구도 결혼생활 하랴, 아기 키우랴 바쁘고 저도 결혼 준비로 분주했다. 그러다 오랜만에 친구랑 만나기로 해서 그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선물을 샀다. 아기 먹을 간식이랑 그림책 몇 권을 사서 가져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친구 집 근처에 드럭 스토어가 있더라. 마침 저도 살 게 있어서 들어갔다가 학창시절에 즐겨 쓰던 립밤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립밤을 보고 옛 추억에 잠긴 A씨는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립밤 하나, 그리고 향기 좋은 핸드크림을 구매했습니다. A씨는 “지금에야 그리 비싼 제품이 아니지만, 어렸을 때는 꽤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그래서 친구랑 알뜰하게 꾹꾹 짜서 끝까지 썼던 기억이 난다. 친구도 립밤을 보면 추억에 잠길 것 같아서 선물하려고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게 선물을 들고 친구 집으로 향한 A씨는 친구와 만나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줄 선물이 있다”라며 아기 선물, 친구 선물을 꺼냈는데요. 그랬더니 친구가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립밤을 빤히 바라봤습니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렀는데요. 친구는 한참을 숨죽여 울었습니다. 10분간 아무 말도 없이 펑펑 운 친구는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열었습니다. “내 물건, 내 선물을 가져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 결혼 후 오로지 육아에 전념했던 친구는 립밤이 필요해도 아기용 립밤을 썼고, 옷 한 벌 사서 입는 것도 망설였습니다. “이거 살 돈이면 아기에게 더 좋은 걸 사줄 수 있는데…”라며 포기했습니다. 음식도 오직 아기를 위한 것, 옷도 오직 아기를 위한 것. 항상 아기 물건은 좋은 거로 사주지만, 구두 밑창이 다 떨어질 만큼 자기 물건에는 돈을 쓰지 않았습니다. “아기에게 하나라도 더 해줘야 하는데, 내 걸 욕심내면 나쁜 엄마 같아서 이상하게 죄책감이 들더라”며 친구는 고백했습니다. 눈물을 쏟은 친구를 달래며 집으로 향하던 A씨는 “저도 마음이 아파서 집 가는 버스에서 처량하게 울었다. 차마 친구 앞에서는 못 울고, 끝까지 참다가 집 오는 길에 눈물을 쏟았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친구에게는 조만간 우리 꼭 쇼핑하러 가자, 좋아하는 전시회도 보러 가자고 약속했다”라며 “이 세상 모든 아기 엄마들 힘내시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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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일하는지 말 안 해주던 엄마를 친구 집에서 마주친 딸이 엄마에게 보인 반응몇 개월 전부터 일을 다니기 시작하신 A양의 어머니, 하지만 딸에게 어디서 일하는지는 절대 말해주지 않으셨는데요.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A양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A양은 친구네 집에 놀러 갈 일이 생겼는데요.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친구네 집에 가려고 A양과 친구들 5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함께 만화 영화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기로 했는데요. A양은 한껏 들떴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집주인 친구는 전화를 걸어 “아줌마, 저 지금 친구들이랑 집으로 가고 있어요. 맛있는 것 좀 해주세요. 거실이랑 제 방도 치워주시고요”라고 말했는데요. 그 친구는 “집에서 집안일 도와주시는 아주머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친구들은 “너네 집 잘 사나 보다”라며 깜짝 놀랐고 그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수다를 떨며 친구네 집으로 향한 A양은 깜짝 놀랐는데요. 그곳에서 자신의 엄마를 만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사를 하고 고개를 딱 드는데, 서 계시던 어머니. 친구가 요리해놓으라고 시키고, 청소하라고 시킨 집안일을 도와주신다는 아주머니는 A양의 어머니였습니다. A양은 눈물을 꾹 참고 고개를 숙였는데요. A양의 엄마도 시선을 피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A양은 “엄마에게 아는 척을 해야 하나, 우리 엄마라고 말해야 하는데…”라며 복잡한 생각에 빠졌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신나게 음식을 먹는 친구들 속에서, A양은 한 입도 먹지 못했는데요. 주방 구석에서 과일을 깎고 계시는 어머니를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때, A양은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친구가 우리 엄마에게 뭐 해달라고 시키는 것도 화나고, 당당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고 고백했는데요. A양은 끝내 어머니의 손을 잡았고. “엄마, 그냥 가자”라며 집에서 나와 친구들은 모두 당황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어머니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고 A양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만 숙이고 있었습니다. A양은 집에 와서는 방에 숨어 하염없이 울었다고 고백했는데요. A양은 “생각해보니까, 엄마는 내 학원비 보태시려고 일하시는 거였다. 내가 예체능 쪽이라서 돈이 많이 드는데, 엄마는 조금이라도 비싼 학원비를 감당하시려고 그렇게 일하시는 거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보내신 문자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머니는 A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는데요. “딸, 엄마를 친구 집에서 만나서 많이 당황했겠다. 엄마는 너가 속상해할까 봐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들통나 버렸네. 엄마가 본의 아니게 속여서 미안하고, 친구들하고 곤란하게 만들었을까 봐 걱정된다. 그래도 엄마는 딸에게 고마워” “친구들 앞에서 엄마를 창피해할까 봐 걱정도 했는데, 거기서 너가 ‘엄마’라고 불러줘서 정말 고마웠어. 집에 오는 길에 너가 엄마 손을 꼭 잡아줘서 엄마는 우리 딸이 다 컸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더라. 그래도 너가 울면 엄마 속은 뭉개져” “엄마는 너가 잘 되면 좋겠고, 너가 원하는 걸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너를 위해서 일한 거야. 그게 널 이렇게 속상하게 할 줄은 몰랐어” “엄마가 다 미안하고 고마워. 저녁땐 같이 밥 먹자. 사랑해” A양은 “진짜 오늘처럼 이렇게 많이 운 적은 없는 것 같다. 가슴 아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고 고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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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이유로 배가 불러와 병원에 간 남성, 의사는 그의 뱃속에 있던 이물질에 깜짝 놀랐습니다중국에 사는 어느 한 남성은 늘 뱃속에 가스가 가득 차 있는 듯한 복부 팽만감을 호소해왔습니다. 또 변을 제대로 보지 못해 배가 산처럼 부풀어 오르고 복통에 시달려야 했는데요. 그는 참다 참다 못 참겠는 순간이 찾아왔고 그는 병원에 찾아갔습니다. 의사로부터 진단받게된 그의 병명에 그는 놀랐는데요. 처음 듣는 병명에 그는 당황했습니다. 의사가 말한 그의 병명은 희귀병인 히르쉬스프롱(Hirschsprung)병’이었습니다. 선천성 거대 결장증이라고 불리는 이 병은 장에 신경이 제대로 분포되지 않아 정상적으로 변을 보지 못하는 질환인데요. 남성은 태어날 때부터 이 병을 앓아와 평생을 만성 변비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20대인 그의 장에는 많은 변이 쌓이게 된 것입니다. 결국 2017년 당시 병원을 찾은 그는 대장절제술을 받게 됐습니다. 수술을 집도한 잉류 박사는 “환자가 복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을 때에 배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심하게 부풀어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의료진은 남성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하여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는데요. 수술을 진행하던 의료진은 모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75cm가 넘는 대장 속에는 엄청난 양의 대변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인데요. 대장을 절제한 뒤 의료진이 측정한 변이 가득찬 대장의 무게는 무려 13kg이 넘었습니다. 남성은 3시간이 넘는 수술을 모두 끝내고 무사히 건강을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전문가들은 변비 증상을 가볍게 여겨 증상을 악화시키면 최악의 경우 장폐색과 패혈증 등과 같은 심각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변비가 심할 때는 병원을 찾는 등 적극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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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다녀온 아들의 손등에 ‘수상한 낙서’를 본 아빠가 의미를 알고 오열한 이유새학기가 시작되어 학교에 다녀온 아들은 본 아빠는 아들 손에서 수상한 낙서를 발견하고는 조심스럽게 그 의미를 물었습니다. 잠시 망설이다 힘겹게 털어놓은 충격적인 말에 아빠는 조용히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국 일간 더선(The Sun)은 손등에 숫자를 센 듯한 흔적을 가지고 돌아온 아들에게 그 의미를 듣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낀 아빠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습니다. 슬하에 세 자녀를 둔 아빠 매튜 비어드(Matthew Beard)는 지난 14일 SNS에 사진 한 장을 공개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손등에 연속적으로 그려진 작대기들이 담겨 있어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는데요. 당시 매튜는 사진을 공개하며 “제 아들이 고등학생이 된 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아들 손에는 지난 이틀 동안 아이가 언어적으로 또 신체적으로 얼마나 많은 괴롭힘을 당했는지 기록되어 있었다”며 “총 21개. 가슴이 너무 아프다”라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알고 보니 아들이 손등에 그려온 작대기들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고통을 참으며 기록한 ‘왕따’의 증거였습니다. 매튜는 “학교는 불량 학생들을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그들의 부모 역시 (책임을 물어) 벌금을 내야 한다”라고 분노했습니다. 덧붙여 “강력한 사진인 것 같아 공유한다. 아들은 이틀 동안 학교에서 얼마나 자주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보여주고 싶어했다”며 사진을 공개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매튜는 “당신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그저 아이들이 학교에서 안전하길 바란다”며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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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저 보고 괴물이래요..” 거대한 혹을 가진 남자의 슬픈 사연슬로바키아에 사는 47세의 스테판 졸레이크는 10년 전부터 지방종으로 인한 증상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방종은 연부조직에 생기는 종양 중 하나로, 스테판의 경우 양쪽 귀 아래에 지방종이 자라기 시작해 10년 동안 턱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형태로 발전했는데요. 스테판의 지방종 무게는 6㎏이 훌쩍 넘었으며, 비정상적으로 턱 부위가 발달해 마치 혹이 달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당초 현지 의료인들은 스테판의 합병증 가능성이 높아 수술을 거부했지만, 고통을 참지 못한 스테판은 지난 해 6월 수술을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5시간이 넘는 수술을 버틴 결과, 그의 얼굴은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회복될 수 있었는데요. 아직 턱과 귀 근처에 남아있는 지방세포 일부를 제거하는 추가 수술이 남아있는 상태지만, 그는 새 삶을 찾은 것과 마찬가지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는 “20대 초반에는 그저 남들보다 턱이 좀 클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턱이 점점 자라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면서 “길거리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어 “지난 해 받은 수술은 내 생애 최고의 일이었다”면서 “이제는 친구들과 호프에 가 맥주를 마실 수도 있다.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않아도 되어 행복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의 수술을 집도한 미국 마틴대학교의 이고르 호모라 박사는 “이번 수술의 환자의 인생을 바꾸는 중요한 수술 이었다”면서 “하지만 아직 완벽하게 수술이 끝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턱 부근에서 자라는 세포를 제거하는 작업이 남아있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