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목록
-
311일 동안 홀로 우주에서 떠돌던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순간“우주에 있을 때는 지구가 그리웠는데, 지구에 도착하니 우주가 그립군요.” 2005년 10월 11일 오전 5시 9분(모스크바 시각), 카자흐스탄 북부에 있는 아르칼릭 마을 근처 초원지대에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가 내려앉았다. 대기하던 러시아 구조대원이 소유즈의 문을 열자 ‘가장 오랜 시간을 우주에서 보낸’ 세르게이 크리칼레프가 지구에 발을 디뎠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다녀온 이번 우주비행은 크리칼레프의 6번째 비행이었다. 이번 179일 23분의 비행으로 그는 총 803일 9시간 39분의 우주비행기록을 갖게 됐다. 세계에서 가장 긴 비행기록이다. 크리칼레프가 경신하기 전의 기록은 러시아 우주인 세르게이 아브데예프가 갖고 있던 747일이었다. 크리칼레프는 1958년 4월 27일 러시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레닌그라드 공과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수영과 볼링, 산악자전거, 곡예비행을 즐기던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그는 러시아 국립 곡예비행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1983년에는 모스크바 챔피언, 1986년에는 옛 소련 챔피언에 선정됐다. 그는 1988년 옛 소련 우주정거장 ‘미르’(MIR)를 다녀오며 우주에 첫발을 내딛었고, 두 번째 우주비행도 미르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두 번째 미르 방문에서 최장시간 우주비행이란 대기록을 가능하게 한 사건을 겪는다. 바로 우주 미아로 150여일 동안 우주에 방치된 것. 크리칼레프가 미르로 떠난 1991년, 소비에트 연합의 소속 국가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가 독립하며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가 들어섰다. 체제가 바뀌며 러시아는 미르에 우주선을 보낼 자금이 부족해졌고, 1991년 11월 크리칼레프를 지구로 귀환시키려던 계획은 무기한 연기됐다. 우주에 남겨진 크리칼레프는 언제 지구로 돌아갈 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90분마다 지구와 교신하고, 1주일에 2번 러시아 우주센터를 방문한 가족과 통화하며 외로움을 견딜 수 있었다”고 밝혔다. 크리칼레프는 귀환 예정일보다 150여일이 지난 1992년 3월 25일 마침내 지구로 돌아왔다. 이마저도 독일 정부가 2400만 달러를 지원한 덕분이었다. 이 150일이 없었다면 아브데예프의 우주비행 기간인 747일보다 짧으니 옛 소련 붕괴가 대기록 달성에 한몫한 셈이다. 크리칼레프는 레전드(legend) 그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도 여럿 붙는다.
-
죽은지 5시간만에 살아났지만 11일간 발버둥치다 다시 사망한 여성한 여성이 관 속에서 살아나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11일 동안 관 속에 의식이 없는 상태로 누워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로산젤라 산토스(37세)의 무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고, 그녀의 시신이 들어있는 관을 열었을 때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느라 생긴 그녀의 몸에 있던 상처가 발견됐습니다. 나무 관은 못으로 닫혀 돌무덤 안에 묻혔지만 지난 금요일에 그녀의 가족이 관을 열었을 때 그들은 산토스의 몸이 따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구급차를 불렀고 로산젤라 산토스는 관속에 들어간지 11일만에 병원으로 이송되게 됩니다. 과연 로산젤라 산토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로산젤라 산토스는 1월 28일 병원에서 사망선고를 받고 다음날 매장됐습니다. 암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했기 때문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관에 들어간지 11일이 됐던 2월 9일, 무덤 안에서 비명과 함께 쾅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근처에 살고 있던 ‘나탈리나 실바’는 깜짝 놀랐고 서둘러 무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무덤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때 무덤 안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묘지에서 노는 아이들이 저에게 장난을 치는 줄 알았어요. 그때 그녀의 신음 소리가 두 번 들렸고, 그 두 번의 신음 소리 후에 소리는 멈췄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산토스의 어머니 게르마나 데 알메이다(66)와 가족들은 그 소식을 듣자 깜짝 놀랐고 서둘러 그녀의 관이 놓여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관 뚜껑을 열어본 가족들은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따뜻했고 그녀의 몸이 관에 넣어졌던 것과는 다른 위치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산토스의 귀와 콧구멍에 있던 솜 역시 빠져나와 있었고 손과 이마에 부상이 있어 탈출을 시도했던 흔적도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가족들은 인터뷰에서 관 뚜껑 옆면의 못도 위로 밀려 올라갔고 내부에 긁힌 자국과 피가 묻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산토스는 곧바로 가족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끝내 또 다시 사망 판정을 받게 됩니다. 가족들은 의사들의 말에 또 한번의 큰 충격적을 받게 됩니다. 병원의 의사들에 따르면 그녀는 심정지로 인해 사망 판정 받은지 5시간만에 다시 깨어났지만 관속에 갇힌 나머지 “패혈성 쇼크”로 인한 심장 마비로 또 다시 사망한 것이라고 전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이 조금만 더 빨리 발견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
한 부부의 아이를 ‘대리 임신’한 20대 대리모가 초음파 사진 보자 깜짝 놀란 이유한 젊은 여성이 다른 부부의 아이를 대리 임신했다. 그러나, 그녀는 초음파 사진을 보고 그자리에 얼어붙었다. 샤니스는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꽃다운 나이의 소녀였다. 그런데 어느날 ‘대리모’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던 중,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언젠가 불임 부부를 위해 대리모가 되어주겠다고 다짐했다. 몇년이 흘러, 샤니스는 첫 아들을 출산했다. 그녀는 이 행복을 남들에게도 전하기 위해 대리모가 되기로 결심했다. “남들이 절 어떻게 보든 상관없어요. 그저 다른 부부의 꿈을 도와주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그녀가 너무 어려서 대리모 심사에 떨어질 거라고 했다. 그러나 샤니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필요한 자격들을 모두 이수하게 된다. 얼마 후 부모가 되는 것 외엔 소원이 없던 부부 스티브, 조안나를 만났다. 그들은 오랜 임신의 실패로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부부는 샤니스의 손을 잡더니 간절히 마지막 소원을 부탁했다. 샤니스는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꼭 돕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LA로 떠났고 그곳에서 샤니스는 부부의 배아를 이식 받았다. 당시, 샤니스의 나이는 21세로 영국 최연소 대리모가 되기도 했다. 이식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샤니스도 임신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의 배가 너무 빠르게 부풀기 시작했다. 의사는 초음파 검사를 실시했고, 그곳에 조안나와 스티브도 와 있었다. 잠시후, 의사의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 “쌍둥이를 임신하셨네요” 부부는 날아갈 듯 기뻐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10주 뒤 의사는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녀의 뱃속엔 아기 한 명이 더 있었던 것이었다. 샤니스는 세쌍둥이를 임신한 것이다. 얼마 후, 윌로우, 해리슨, 데이저는 건강하게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샤니스는 자신의 선택에 한치의 후회도 없다고 말한다. “비록 저는 21살이었지만, 아기들을 전해드리는데 큰 책임감을 갖고 있었어요.” “그것은 제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습니다.” “다시 할 거냐고 묻거든 꼭 그러고 싶다고 말하고 싶네요.” 라며 그녀의 생각을 전했습니다. 한가족의 꿈을 이뤄준 샤니스에게 찬사를 보내주고 싶네요.
-
점점 커져가는 삼각형 머리를 가진 아이에게 내려진 저주의 정체머리를 그려보라고 하면 우린 동그란 모양을 상상할 것입니다. 원형이든 타원형이든 모두 정상적인 모양이죠. 게다가 미의 기준이 올라간 지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머리 모양에 대한 요구도 높아져 동글동글한 머리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이 세상에 삼각 모양 머리를 한 아이가 갖은 무시와 괴롭힘을 당하며 살고 있습니다. 리베레타는 아프리카 르완다의 한 평범한 가정주부로 여느 아프리카 여성들처럼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습니다. 결혼 후 그녀와 남편은 가난하지만 충실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죠. 아프리카 여성인 그녀는 아이 하나만 낳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리베레타도 여러 명이 아이를 낳아 남편과 함께 자녀들을 키우면서 그런대로 평온한 삶을 살아 갑니다. 하지만 불행이 그들에게 닥쳐오고 있었죠. 그 해 리베레타는 또 다시 임신을 하고 지금까지 순산하였기에 이번 임신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낙후한 아프리카에서 산부인과 정기 검진은 꿈도 꿀 수 없었죠. 그래서 이 아이의 태교도 대수롭지 않게 넘깁니다. 한 달을 뱃속에 품고 출산일이 다가오자 이번에 리베레타는 이상함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순조로웠던 출산에 비해 이번엔 몇 배로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출산하면서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고 이 모든 건 아이를 보는 순간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아이를 본 리베레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이의 머리 모양이 불균형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처음에 그녀는 아이의 머리가 너무 커 출산 과정에서 눌렸을 거라 생각하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하루하루 커가면서 머리 모양은 정상적으로 회복하기는 커녕 오히려 바깥쪽으로 계속 자라는데 갈수록 더 심해졌습니다. 결국 머리 모양은 기괴한 삼각형으로 변했고 이걸 지켜보는 리베레타는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를 더욱 속상하게 했습니다. 아이를 보며 남편은 리베레타를 위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리베레타에게 욕설을 퍼붓고 그녀가 괴물을 낳았다고 핀잔 줬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아이를 책임질 수 없다며 밖에 나가서는 아내가 악마를 낳았다며 떠들어 댔죠. 뿐만 아니라 리베레타를 위협하면서 아이를 없애라고까지 강요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녀를 내쫓겠다는 말에 리베레타는 남편이 자신에게 겁 주는 줄로만 생각해 따르지 않았고 언젠간 남편이 아이를 사랑스럽게 대해줄 거라 믿고 있었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리베레타가 걱정했던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남편은 집에 있는 비싼 물건을 죄다 팔고 하룻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녀는 삼각형 머리 아들을 데리고 시댁으로 가 자신들을 받아주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예상외로 따뜻하게 대해줬던 시댁에서도 이 아이를 괴물로 여겨 리베레타가 이 아이를 포기한다면 그녀를 받아주겠다고 하죠. 그러나 리베레타는 차마 아이를 버리지 못했고 결국 그들은 또다시 쫓겨납니다. 갈 곳 없게 된 그녀는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돌아가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그래도 친정은 친정이였습니다. 그들은 이 가엾은 모자를 받아들이게 되죠. 하지만 리베레타 친정은 너무나도 가난한 탓에 여기서 그들은 배불리 먹기는 커녕 그저 비바람만 막을 수 있을 뿐이었죠. 그렇다 해도 리베레타는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녀는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아들을 등에 업고 매일 집안 농사 일을 도와줬습니다. 시간이 뜨기라도 하면 그녀는 삼각형 머리의 아들을 데리고 남의 집 일까지 봐주면서 집안 생활비에 보탰습니다. 매일 기괴한 아이를 업고 동네를 다니다 보니 점차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했고 심지어 아이 더러 악마의 자식, 외계인이라고 대놓고 불렀죠. 그러다 보니 리베레타를 불러주는 일자리는 어디에도 없었고 기괴한 머리 모양의 아이를 업고 다니면 보는 사람마다 무서워했습니다. 이에 리베레타는 매우 무기력해졌지만 아이의 끼니를 위해 그녀는 이 악물고 참으면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그녀는 머리를 써 수건으로 아이의 머리를 감싸 숨기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흉년이 들었고 리베레타의 삼각형 머리 아들이 가져온 액운 때문이라고 소문이 퍼집니다. 결국 모자는 마을에서 쫓겨났고 리베레타는 아들을 업고 며칠 동안 길거리를 헤매게 됩니다. 친정은 이 사실을 참을 수 없어 촌장을 찾아가 싹싹 빌었고 결국 촌장의 동의하에 가엾쓴 모자는 비로소 친정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들의 괴상한 머리에 대해 리베레타는 “그 전에 낳았던 다른 아이들은 전혀 이렇지 않고 모두 정상인데 왜 이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세상 사람들이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난 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아이가 가였고 여러분들이 내 아들을 도와주기만 한다면 난 당신들에게 목숨도 바칠 수 있다” 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정상인으로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하여 리베레타는 필사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고 드디어 모은 돈으로 아들을 데리고 읍내의 작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습니다. 의사들은 이 아이를 보자마자 의아했고 진단을 내릴 능력조차 안 됐었죠. 방법이 없게 된 리베레타는 계속 돈을 모아 아들을 데리고 큰 병원에 가보려고 했습니다. 가엾은 아이는 하루하루 자라면서 점점 더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그는 늘 괴로운 표정을 짓기도 하고 하루 종일 울기도 합니다. 아이의 정수리에 자란 거대한 혹도 더 부어 올랐고 심지어 기존의 삼각형이 점점 더 커져갔죠. 리베레타는 매우 초조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괴로움의 연속으로 그녀의 건강도 점점 나빠졌고 다행히 우연한 기회에 한 매체가 그들이 있는 지역에 와서 취재를 합니다. 그들은 리베레타와 아들의 삶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그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듣고 사비로 모자의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고 이는 곧 100만 뷰가 넘게 됩니다. 그 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가엾은 아이를 알게 되었고 제작진은 온라인 후원 모음 플랫폼을 만들어 사람들이 기부하도록 하여 삼각형 머리의 아이가 치료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처음에 그들의 목표는 4만 달러였고 이는 빠른 속도로 모아지게 됩니다. 덕분에 리베레타는 아들을 데리고 르완다의 가장 좋은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습니다. 하지만 이 병원의 기술로서는 여전히 치료해 줄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 말인 즉 병을 고치는 유일한 방법은 삼각형 머리의 남자 아이를 해외로 보내는 것이었죠. 하지만 4만 달러는 턱없이 부족했고 그래서 리베레타는 매일 악착같이 일해 가엾은 아들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길 바랬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진 후 일부 사람들은 무서워했고 왜 이런 기괴한 아이가 태어났는지 의아해합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우선 유전자 변이가 머리 발육 기형을 초래할 수 있고 유전자 변이 과정에서 유전자가 잘못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때문에 신체 구조가 변했고 유전자 복제 과정에서 이 같은 이상 현상은 흔히 발생하지만 다만 여러 문제를 초래할 수 있죠. 하지만 전반적으로 유전자 변이는 아이의 성장에 매우 큰 영향을 주고 대부분 나쁜 영향이죠. 두 번째 원인은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아프리카 지역은 경제가 낙후해 생활 환경도 깨끗하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균과 바이러스의 감염이 생기기 쉽고 전염병도 흔히 발생하죠. 알려진 바에 의하면 산모가 임신 중 몸 속에 전염병을 앓게 되면 아이에게 전염되어 결국 기형아를 낳게 됩니다. 세 번째 원인은 뇌에 물이 차서 생긴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뇌에 물이 차면 아이의 머리가 커지게 되지만 보편적으로 뇌수증은 후천적으로 생기는데 삼각형 머리의 남자애는 태어날 때부터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이 가능성은 배제해도 됩니다. 마지막 경우는 쌍둥이 소실 증후군일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도 알겠지만 쌍둥이가 크는 과정에서 배 속에 두 아이가 서로 영양 흡수를 하기 위해 나약한 한 쪽이 잠식되는 경우가 있는데 잠식된 이 아이는 없어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나오게 됩니다. 즉 신체 기관이 더 많이 생기죠. 이 큰 머리도 산모의 몸 안에 다른 생명이 존재했다는 이유를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출산을 하면서 각종 기형 문제가 생기지만 현대인들에게 기형 아이 출산은 충분히 피할 수 있습니다. 산부인과 정기 검진만 한다면 태아의 기억 문제를 초기에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일부 빈곤 지역에서는 태아가 기형이어도 알 수가 없어 기형 아이가 태어나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리베레타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의 병을 고치는 일입니다. 우리는 삼각형 머리 남자애가 좋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하여 정상 생활하기를 기원할 뿐이죠. 리베레타의 위대한 모성에도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남을 것입니다. 지금도 리베레타와 삼각형 아이에게 후원이 가능하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의 아래의 링크로 들어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녀가 마트 앞 ‘노숙자’와 결혼할 수 밖에 없었던 놀라운 이유‘자스민 그로건’은 어느 날 쇼핑을 하러 갔다가 마트 앞에 있는 노숙자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돈이 필요하냐고 물었지만 그는 당당하게 “돈은 필요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마트 안으로 들어갔던 자스민은 쇼핑하는 내내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아주 잠깐 마주쳤지만 무언가가 통했던 것일까요. 결국 ‘자스민’은 서둘러 쇼핑을 마치고 나와 그에게 다시 말을 걸었습니다. 자스민은 그에게 “어떻게 당신을 도울 수 있나요?” 라고 또 한번 물었지만 이번에도 그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오히려 노숙자는 돈을 받는 대신 무거운 쇼핑백을 그녀의 차로 옮기는 것을 도왔습니다. 자스민은 이대로 그를 놓치기 싫었고, 노숙자인 ‘맥컬리 머치’에게 “혹시 저녁식사 같이 할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앞선 상황과 달리 흔쾌히 동의했는데요. 그들은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서로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눴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자스민은 맥컬리가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스민은 노숙자에 대한 편견이 없었고, 맥컬리 머치는 유쾌하고 긍정적인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자스민은 계속 연락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에게 휴대전화를 선물해줬고, 그렇게 그들은 연락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항상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자스민에 감사한 맥컬리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당신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에 자스민은 “나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도 당신을 제 마음에서 지울 수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연애를 시작하였고, ‘맥컬리 머치’는 ‘자스민 그로건’의 관심과 사랑에 지저분해 보이던 겉모습을 하나둘씩 바꿔 나갔습니다. ‘맥컬리 머치’는 지저분한 수염을 깎았고, 옷을 갖춰 입자 모델 같은 외모를 가진 훈남의 모습으로 변신했습니다. 또한 자스민의 도움으로 벽돌공이라는 직업을 얻어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워졌습니다. 그 뒤로도 그들은 계속 사랑을 이어나갔고, 현재는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
하관쪽 얼굴이 사라진 채로 태어난 남자의 20년 뒤 소름 돋는 변화 ㄷㄷ바니아와 요셉은 서로를 너무 사랑하며 2년째 함께 살고 있습니다. 바니아가 요셉을 처음 만난 곳은 회사였는데요. 요셉을 처음 봤던 날 바니아는 새벽에 출근했던 탓에 비몽사몽했던 상태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순간 요셉이 회사에 들어왔습니다. 바니아는 자신이 눈 앞에 본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요셉의 얼굴에서 턱이 있어야 할 부분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궁금했지만 예의상 그녀는 요셉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요셉이 동료와 이야기를 나눌 때 바니아는 요셉이 오토페컬 증후군으로 턱이 없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병으로 인해 요셉은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위관에 의존하여 음식을 섭취하며 스스로 숨을 쉴 수조차 없어 인공기관을 이용하여 호흡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입이 없기에 말을 할 수 없어 필기 및 전자 제품에 의존하여 말을 전달해야 했습니다. 요셉은 생후 며칠 밖에 되지 않았을 때 피부와 뼈로 턱을 만드는 수술을 여러 차례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친부모도 그의 생김새 때문에 힘들어 했고 결국 그를 버렸습니다. 그 후 요셉은 지금의 양부모에게 입양되었고 그의 성장과정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외부의 다양한 반응이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고, 때때로 그는 두려워서 도망치기도 하였고 숨어서 몰래 울기도 했습니다. 요셉은 그저 자그마한 존중을 원했습니다. 비록 불우한 어린시절을 겪었지만 요셉은 주변에서도 진심으로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요셉은 긍정적인 힘을 얻으며, 대학생활도 했고 회사에 취직하여 출근하는 재미를 맛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요셉은 회사에서 아리따운 여인을 보게 됐고 점점 그녀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바니아로 그녀는 수화를 배워서 요셉과 이야기를 나눴고, 인사를 할 때면 항상 웃음으로 반겨줬습니다. 요셉은 바니아의 웃음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차츰 두 사람은 동료에서 친한 친구가 되어 자주 같이 데이트를 하게됐습니다. 그런데 다른 동료들이 둘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바니아는 항상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거쳐 그는 요셉의 내면을 보게 되면서 두 사람은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해 두 사람은 결혼식을 하지 않고 혼인증명서를 받아 같이 살게 됐습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처음으로 요셉을 만났을 때 딸이 왜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남자를 평생 돌봐야 하는 게 달갑지 않았지만 딸이 이미 선택을 했기에 그녀를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 후 그가 다른 남자들보다 더 책임감이 있고 정말 딸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열고 요셉을 사위로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열등감과 좌절감을 매일 느낀다며, 항상 신이 주신 인생 수업이라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신께서 이 곤란을 주신 것은 자신의 용기를 시험하는 것이고, 턱이 없더라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니까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긍정적인 사고가 중요하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인터뷰에서 요셉은 자신과 비슷한 분들도 낙담하지 않고 힘을 내기 바란다며, 희망적인 존재가 되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
9살부터 소녀의 얼굴이 점점 ‘말’ 처럼 변하게 된 충격적인 이유자신의 얼굴을 꽁꽁 감싼 소녀의 이름은 ‘예이’입니다. 그녀가 이런 모습으로 병원에 나타났을 때는 고작 22살, 당시 겉옷으로 얼굴을 감싼 이유는 너무 못생긴 자신의 외모 때문에 사람들이 놀랄까봐였습니다. 예이의 말을 들은 의사는 처음엔 믿지 않았죠. 보통 사람들이라면 20대는 꽃다운 나이고 한창 예쁘고 눈부실 나이이기 때문이죠. 아무리 외관이 뚜렷하지 않더라도 콜라겐과 젊음으로 꽉 찬 얼굴은 못생길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리하여 의사의 끊임없는 위로와 설득 하에 예이는 자신의 머리를 감싼 외투를 내립니다. 걸치고 있을 땐 몰랐는데 얼굴을 보고 나니 그 자리에 있던 의료진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예이의 얼굴은 두 눈이 튀어나왔고 코는 존재조차 보이지 않았고 입술도 부어오른 얼굴에 눌려 겨우 보여질 정도였습니다. 고작 22살의 예이는 키가 150cm 밖에 안 되지만 얼굴은 터무니 없이 컸죠. 너무 놀란 의사는 서둘러 예이에게 간단한 물리적 검사를 한 다음 CT를 찍으러 데리고 갑니다. CT 결과가 나오고 분석 결과 예이의 머릿속에는 두개골과 비슷한 크기의 종양이 발견됩니다. 그녀의 얼굴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종양 때문에 예이의 얼굴이 심하게 변형된 것입니다. 당시 예이는 이미 완전히 실명된 상태였고 기본적인 후각 기능도 잃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종양에 눌려 비뚤어진 입으로만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던 겁니다. 도대체 그녀는 이 상태로 어떻게 수십 년을 살았을까요? 예이는 절강성의 한 작은 산촌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아리따운 소녀였습니다. 활발한 성격에 집안의 막내 딸로서 넘치는 사랑을 받았죠. 게다가 성격도 착해서 항상 부모님을 도와 간단한 집안 일을 맡아했죠.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한 예이는 시력이 나날이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예이의 아버지 오씨는 아이가 단순 근시인 줄 알고 안경만 맞추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이를 마을의 안경점으로 데리고 갔죠. 하지만 그 후에도 예이의 시력은 계속 나빠졌고 한 학기도 채 마치지 못하고 실명하게 됩니다. 그제서야 예이의 부모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딸과 함께 이곳저곳 의사를 찾아다닙니다. 그들이 예이의 시력 치료에 전념할 때 딸의 몸이 이상하다는 걸 발견합니다. 실명 후부터 예이의 얼굴은 점점 변하기 시작하더니 10대 여자아이 얼굴에 갑자기 종기가 생겨 중앙에서부터 바깥쪽으로 계속 퍼져나가며 마치 그 안에 뭐라도 있는 것처럼 짜고 싶을 정도였죠. 예이를 괴롭히는 것은 이상해지는 얼굴 뿐만 아니였습니다. 병 때문에 예이는 호흡 곤란에 식사를 하는 것 까지도 힘들어졌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 때문에 자신감을 잃었고 그 뒤로 예이는 사람을 만나러 외출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때서야 오 씨 부부는 딸에게 큰 문제가 생겼음을 감지하고 더는 지체할 수 없어 급히 딸을 데리고 현지의 큰 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는 예의가 신경종이라는 병에 걸렸다고 했습니다. 비록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지만 의사의 심각한 표정만 보고도 큰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에 오 씨 부부는 아이가 병에 걸렸으니 서둘러 치료받게 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의사는 한참 동안 침묵 후 받아들이기 힘든 말을 건넵니다. 의사는 현재 예이의 병세는 치료를 받아도 완치보다 위험 가능성이 더 크며 완치 확률은 0.1%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이였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치료를 포기하는 게 낫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오 씨는 온 몸에 찬물을 맞은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어 굳어버립니다. 예이의 희박한 완치 가능성과 그에 드는 수술 비용은 이 가족이 부담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죠. 어쩔 수 없이 오 씨는 속상한 마음을 억누른 채 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당시 예이는 고작 9살, 잘 웃고 잘 뛰놀아야 할 나이인데 병원에서 돌아온 후부터 그녀는 말도 잘하지 않고 하루 종일 방에만 틀어박혀 있습니다. 그리고 얼굴의 종양은 끊임없이 커져 하마처럼 변해갔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 씨 부부가 딸의 병에 지쳐 있을 때 예이의 어머니가 사고를 겪게 됩니다. 어느 날 그녀가 집 정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뇌출혈이 오는 바람에 자립 능력을 완전히 잃었고 예이의 언니는 이미 외지로 시집을 간 상태였습니다. 그 후 오 씨는 혼자서 이 모든 걸 견뎠고 쉴틈없이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속상하고 많이 아플텐데도 예이는 늘 아버지를 도와 일을 분담하려 했으며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에게 물으면서 요리하는 법을 배워갔죠. 후각도 시력도 잃은 소녀가 만든 음식의 맛은 어떨지 안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 씨는 예이가 만들어준 한 끼가 얼마나 큰 노력을 했을지 알기에 맛없어도 웃으며 다 먹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예이는 주방에서 식사 준비하다가 부주의로 문턱에 있는 걸상에 걸려 넘어집니다. 그러면서 공교롭게도 얼굴을 부딪혀 다량의 피를 흘리게 됩니다. 오 씨는 이내 딸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고 당시 예이의 출혈량은 이미 1,000ml까지 달했기에 의사는 그에게 위급 통지서에 사인하게 합니다. 그리고 오 씨에게 계속 예이의 치료를 미룬다면 그녀의 생명을 보장해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당연히 오 씨도 딸이 수술 받고 치료도 받게 해주고 싶었죠. 하지만 아내까지 아프면서 집안의 빚이 날로 늘어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힘으로는 예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결국 의사의 도움 하에 그는 인터넷을 통해 도움 받을 방법을 알았고 여러 플랫폼에 자신의 사연을 얘기했습니다. 다행히 많은 방송 매체에서 오 씨 가족의 사연을 접하고 앞다퉈 보도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자선금을 기부하게 되었습니다. 이내 예이의 수술 비용이 마련됐고 오 씨는 다시 딸과 함께 수술을 위해 더 큰 병원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정밀 검진 후 의사는 예이의 병이 신경종이 아니라 섬유성 골이 형성이라는 진단을 내립니다. 쉽게 말해서 뼈가 자라는 과정에서 이상이 생기는데 현재로선 수술을 통해서만 병변의 부위를 절제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술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였죠. 특히 예의의 상황은 의사들조차도 쉽지 않아 했습니다. 결국 전문가들의 논의 후 수술 방안을 확정합니다. 예이는 드디어 수술실로 들어갔고 문 밖에서 초조해진 오 씨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수술 시작 후 얼마 안 돼서 출혈이 크게 일어났고 실제 상황에서의 수술 난이도는 예상보다 힘들었습니다. 수술을 받던 예이는 혈압이 내려가면서 심박수도 80에서 160으로 올라가 거의 쇼크 상태에 빠지게 되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도 포기하지 않고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돌발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수술실 문밖에서 오 씨는 딸이 걱정되서 앉지도 못한 채 몇시간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수술실 문이 열렸고 아직 의사가 나오기도 전에 그는 급히 달려가 의사에게 수술 결과를 물었습니다. 의사에게 수술이 성공적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는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이 날은 예이가 다시 태어난 날과도 같았습니다. 얼굴의 종양이 제거되었고 골격도 제자리를 찾아갔으며 얼굴도 반쯤 작아졌습니다.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오 씨 가족에게는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죠. 2010년 이후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퉁퉁 붓지 않았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그녀가 다시 병원에 가서 재검사를 했을 때 의사는 희망을 보았고 약간 비뚤어진 코만 고치면 되겠다고 말하였죠. 더 놀라운 건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던 예이에게 남자친구도 생겨 병실 안에는 예이의 웃음소리가 가득했습니다. 알고 보니 집으로 돌아간 후 그녀는 다른 사람의 소개로 지금의 남자 친구를 알게 됐고 두 사람은 교제를 시작하게 된 것이였습니다. 예이는 인터뷰에서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는데 정말 꿈만 같다며 너무 행복하다고 전했습니다.
-
“사람의 속도가 아니에요…” 부산 장산에서 목격됐다는 하얀 괴생명체의 정체부산의 해운대구에는 634m 높이의 ‘장산’이라는 산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산에서 ‘장산범’이 자주 목격된다고 하는데요. 장산범이 처음 목격된 것도 바로 이 장산에서이며, 이 장산에서 목격되었고, 범처럼 생겼다고 해서 ‘장산범’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입니다. 박씨는 1992년도에 부산의 해운대구에서 살았는데, 그의 집 바로 뒤쪽에 장산이 있었습니다. 박씨는 아버지와 자주 등산을 하곤 했습니다. 그날도 박씨는 아버지와 함께 장산에 올라갔다고 합니다. 박씨와 아버지는 함께 장산의 중턱까지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 때 뭔가 뒤에서 박씨를 툭치고 앞으로 달려가는 물체가 있었다고 합니다. 뒤쪽에서 하얀색의 털을 뒤집어쓴 어떤 존재가 박씨를 밀치고 앞쪽으로 뛰쳐나갔는데, 엄청 빠르게 산봉우리까지 순식간에 달려갔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박씨가 그 존재를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그 존재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 존재는 하얀색의 두터운 털을 뒤집어 쓴 털복숭이 괴물이었다고 하는데요. 그 하얀털의 털복숭이 괴물은 박씨를 지나쳐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산꼭대기까지 올라갔고, 그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서 산을 오르고 있는 박씨를 내려다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박씨는 그 장산범의 해괴하고 무섭게 생긴 모습을 보고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의 큰 공포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하얀털의 괴물은 산 꼭대기에서 또다시 재빠르게 내려갔고, 산을 오르는 박씨를 또다시 툭 밀치면서 쏜살같이 산 아래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이처럼 박씨는 장산에서 두 번씩이나 장산범을 목격한 후엔, 너무나 무서워서 다시는 장산을 올라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산에서 두 번째의 목격담이 전해지고 있는데요. 1992년에 일행 4명이 함께 장산을 등반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행이 장산의 깊은 숲속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2m 길이의 백호랑이 두 마리를 목격하게 되었는데요. 너무도 놀란 그 일행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고, 수십여명의 무장경찰이 출동해서 그 장산을 샅샅이 수색했다고 합니다. 경찰이 오랫동안 장산 산 속을 수색한 결과, 하얀색의 털뭉치와 뼈, 그리고 2m 크기의 호랑이의 발자국을 발견했지만, 백호랑이 같은 물체는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하는데요. 4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목격한 이 괴생물체에 대한 목격담은 실제로 1990년대에 신문에까지 기사화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당시 4명의 등산객이 목격했던 괴생물체는 백호랑이가 아니라 바로 하얀털로 뒤덮인 ‘장산범’이었다고 하는데요. 그 후에도 장산에 올라갔던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계속해서 장산범이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장산에서 자주 목격되는 괴생명체에 대해 ‘장산범’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고, 장산범은 장산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계속해서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도 또다시 장산범에 대한 목격담이 흘러나왔습니다. 2000년대에는 장산을 넘어서 부산과 김해, 양산, 김천 등 경상남도와 소백산일대에서 장산범을 목격한 목격담이 흘러나왔고, 이 시기에 장산범 목격담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퍼져나왔던 것입니다. 2004년도에 소백산에 등산을 갔던 김씨도 장산범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김씨는 혼자서 하루종일 험악한 소백산 숲속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험준한 소백산을 오르느라 몹시도 목이 말랐던 김씨는 혼자서 ‘어디 물이 없나’하고 중얼거렸는데요. 그 때 갑자기 숲속 언덕쪽에서 ‘졸졸졸’ 하는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여왔습니다. 너무도 목이 말랐던 김씨는 시냇물 소리가 나는 그 언덕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서 시냇물을 찾아보았지만, 시냇물 소리는 계속 나는데도 불구하고, 시냇물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김씨가 그 언덕에 있는 바위 옆으로 가자, 괴상한게 생긴 하얀 털복숭이의 괴생물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김씨가 들었던 시냇물 소리는 바로 그 하얀털로 뒤덮인 괴생물체가 낸 소리라고 합니다. 그때 김씨가 보았던 그 생물은 온몸이 온통 하얀털로 뒤덮여있었고, 네발로 땅을 딛고 있는 3m 길이의 괴물이었는데,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져 있어서 마치 괴물처럼 생겼다고 합니다. 이 정체불명의 하얀 털복숭이 괴물이 산속을 헤메면서 목말라했던 김씨에게 시냇물소리를 내서 자신에게 오도록 유인을 했던 겁니다. 괴생명체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던 김씨는 그대로 산 아래쪽으로 정신없이 도망쳤습니다. 산 아래로 돌아온 김씨는 마을주민에게 자신이 만났던 괴생물체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마을주민들은 이미 그 생물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주민들은 그 생물을 ‘장산범’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 마을에는 깊은 산속을 혼자서 헤메이는 사람이 있을 때는, 장산범이 시냇물소리 같은 요상한 소리를 내서 사람의 혼을 빼놓은 후, 곧바로 그사람을 유인해서 그 사람의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있었습니다. 김씨는 평소에 등산을 무척 좋아했지만, 장산범을 목격한 이후에는 절대로 산에 오르지않는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 전해져내려오는 속설이 하나 있는데, 한밤 중에 첩첩산속을 거닐 때에는 절대로 ‘목이 마르다’는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고 합니다. 만일 한밤 중에 사람이 깊은 산속을 거닐면서 ‘목이 마르다’고 이야기를 하면, 어디선가 숨어있던 장산범이 그 소리를 듣고서 시냇물소리 같은 요상한 소리를 내서 그 사람을 꾀어서, 그사람의 혼을 빼놓고는 그 사람을 유인해 죽인다고 합니다. 2000년 6월 경북 구미시에서 중학생이었던 김모군 역시 학교마당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장산범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김모군은 학교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오전 11시경 김모군이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았을 때, 무언가 하얀 물체가 학교 마당을 가로질러서 쏜살같이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 학교는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 쌓여있었는데, 김씨가 무심결에 창문을 통해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얀털로 둘러 쌓인 정체불명의 괴생물체가 운동장의 우측에서 좌측으로 엄청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고 하는데요. 학교운동장을 엄청 빠른 속도로 지나갔던 그 괴생명체는 김모군이 있는 쪽을 한번 홀깃 쳐다보더니, 곧바로 학교 뒷산쪽으로 아주 날아가듯 빠른 속도로 올라갔고, 금방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개나 고양이보다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스치듯이 지나가버린 그 괴생물체는 온몸이 온통 새하얀색의 긴털로 수북하게 덮혀있는 네발 달린 괴생물체였고, 마치 학교운동장을 나는 듯이 재빠르게 지나갔다고 하는데요. 김모군이 그 때 보았던 물체는 세상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하얀색의 괴생명체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때 보았던 생물체는 바로 장산범이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퍼져나온 장산범 목격담은 50건이 넘을 정도로 많이 존재하고 있는데요. 과연 장산범은 실존하는 괴생명체일까요?
-
몸무게가 ‘1376kg’ 됐던 남자가 죽음을 선택한 상상치도 못한 이유버스터 심커스는 1965년,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서 태어났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의 몸무게는 거짓말 하나 하지 않고 무려 1,376kg이나 된다고 본인이 스스로 밝혔다. 체중이 무려 아프리카 물소보다도 많이 나가며, 중형 화물트럭과 맞먹는 무게였다. 버스터는 이미 15살에 무려 155kg을 기록하였으며, 주위에서는 미식축구 선수가 되어 보라고 권하였지만 본인은 ‘먹는 데 보낼 시간을 운동장에서 쓸데없이 뛰어다니느라고 소비하는 게 싫어서’ 거절했다. 그가 이 처럼 살이 찌기 시작한 때는 1976년 아버지가 많은 재산을 남기고 세상을 뜬 뒤 부터라고 한다. 아버지의 많은 유산 덕분에 그는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거나 닥치는 대로 먹는 등 나태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이였다. 그는 하루종일 집안에서 빈둥거리기만 하였고 항상 밀크셰이크, 초콜릿, 파이 등을 먹으면서 지냈으며, 더 이상 체중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러다 1995년 말에 결국 건강이 걱정되었는지, 온갖 노력을 해서 체중이 무려 106kg까지 줄기도 한다. 그러나 1톤 이상 살을 빼자 갑자기 큰 문제가 생겼다. 급격한 체중 감소로 인해 심리적으로 일종의 흥분 상태에 빠져들게 됐고 매끄럽고 탄탄했던 피부는 축 늘어지고 끈적해 졌다. 그는 이런 인생이 더욱 싫다고 생각하여 다시 다이어트를 관두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빈둥거리는 생활을 하였다가 1년만에 다시 1t이 넘는 체중을 회복하였다. 그렇게 그는 다이어트 이전보다 훨씬 건강한 상태라며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다이어트를 그만둔 이후에도 하루에 0.91kg씩 쪘다고 하며, 자신의 집은 몸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소파와 침대 등의 가구들이 강철로 되어 있다고 자랑까지 하였다. 또 식사 전에 닭고기, 혹은 스테이크를 2kg씩이나 먹고 매일 버터와 시럽을 잔뜩 바른 팬케이크 40장을 산더미만큼 쌓인 감자와 함께 먹었다고 한다. 하루에 사과 파이나 라임 파이를 14개에서 20개 정도 먹었고 밀크셰이크와 사탕 같은 단 음식들은 항상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밀크셰이크 말고는 자신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도 덧붙였다. 2005년 버스터 심커스는 결국 41살의 나이로 미국 댈러스에 위치한 자신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
태어날 때 부터 눈이 없고 말도 못하는 남매의 숨겨진 비밀하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햇빛과 색채를 본 적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눈이 없었고 암흑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그들이 느끼는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남매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시련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누나의 이름은 라이언 동생은 라엘, 네 살 차이 남매입니다. 라이언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불행하게도 동생은 시청각 장애인으로 그의 삶은 어떤 모습일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데요. 누나는 귀를 통해서라도 세상과 소통하고 있지만 동생은 망연자실한 상태였죠. 부모님은 그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게 해주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가난하고 치료비까지 비싼 탓에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비극은 부모님 잭과 릴리의 사랑으로부터 시작됐는데요. 가족의 소개로 만난 그들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이를 갖게 됐고 이 소식에 잭은 누구보다 기뻐하며 아버지가 된다면서 자랑하며 다녔죠. 그는 매일 릴리를 정성껏 돌봤고 여느 가족들처럼 아이의 탄생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드디어 출산 날이 다가왔고, 긴장과 흥분이 되는 잭은 병실 밖에서 서성입니다. 과연 아들일지 딸일지 기다리면서 말이죠. 그러나 이 행복한 고민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깨지고 맙니다. 의사가 나오자 잭은 급히 다가가 묻습니다. 하지만 의사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릴리가 ‘죽은 아기’를 낳았다는 말 뿐이였죠. 잭은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퇴원을 하고 곧바로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습니다. 운명의 장난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것을요. 주변 친구들과 가족들은 부부에게 아직 젊으니 아이를 하나 더 가질 수 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그들 또한 슬픔을 이겨내야만 했습니다. 잭과 릴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처음으로 닥친 불행이니 이제부터는 잘 될 거라고 믿었죠. 그렇게 몇 달 후 릴리는 또 임신을 하게됐고 이번에는 아이에게 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더욱더 조심스러워 했습니다. 그들은 재산의 대부분을 영양제품들을 사먹는데 썼고, 또다시 아이를 잃는 아픔을 겪게 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어느덧 10개월이 지났고 그들은 예전에 슬픔을 겪었던 병원에 다시 오게 됩니다. 이번에는 잭의 마음은 무거웠고 예전처럼 흥분이 됐다기 보다는 걱정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마치 그들과 장난하는 것처럼 지난 아이와 같은 운명을 지녀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립니다. 그들은 대체 왜 인생의 시련을 매번 겪어야 하는지 몰랐고 이번에 그들은 이 시련과 싸워 이겨내리라 마음 먹고 아이를 하나 더 갖기로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아이가 왜 살지 못하는지 원인을 알고 싶었고 어느덧 세 번째 임신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릴리를 슬프게 한 건 9개월 동안 고생 후 낳은 아이가 역시 살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들은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충격들로 그들은 그 뒤 몇 년 동안 아이를 낳자는 얘기를 입밖에 꺼내지도 않았고 심지어 평생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양가 어른들이 계속 아이를 언제 갖냐고 재촉을 했기에 그런 그들은 여기저기 의사를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매번 검사 결과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나왔고, 이에 대해 두 사람은 미칠 노릇이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남편을 위해 릴리가 먼저 다시 한 번 아이를 가져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녀는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각종 준비를 하면서 네 번째 임신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이의 상태에 변화가 생겼는데요. 예전과 달리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수술실 너머까지 들렸던 것이죠. 밖에서 울음소리를 들은 잭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립니다. 하지만 시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는데요. 아이가 눈이 없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주변에서 이상하게 여기며 걱정했지만 릴리와 잭은 마냥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드디어 아이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었죠. 그들은 딸을 잘 키우기로 마음 먹고 여느 아이들처럼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주고 싶었습니다. 이 아이가 바로 딸 라이언입니다. 그들에겐 아이가 살아만 있다면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했고 아이가 맹인이더라도 절대 미워하거나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라이언이 어렸을 때, 릴리는 항상 라이언을 데리고 큰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며 딸의 눈을 치료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다녀도 소용 없었죠. 왜냐하면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병원 의사들은 모두 라이언의 눈은 고칠 수 없다고 이야기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절망 속에서도 그들은 또 아이를 낳게 됩니다. 하지만 라이언보다 더 건강할 줄 알았던 둘째는 오히려 상황이 더 안 좋았습니다. 둘째 아이는 시각 뿐만 아니라 청각에도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죠. 잭 부부는 처음에 시청각에 장애가 있던 라엘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방법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라이언이 동생을 세심하게 돌보는 걸 보고 그들도 차츰 라엘과의 소통 방법 알게 되었죠. 라엘은 어릴 때부터 누나를 잘 따랐고 어딜 가도 누나 손을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잭이 라엘의 손을 잡아줘도 아이는 꿈쩍하지 않았고 마냥 누나만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잭 부부는 개인 시간도 없이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남매가 크면서 하나의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잭은 라이언과 라엘을 학교에 보내려고 했지만 그 어떤 학교도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죠. 왜냐하면 아이들은 자립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라이언은 그나마 좀 나은데 라엘은 자립 능력이 아예 없고 누나와 떨어지는 걸 싫어했기에 그들은 집에 있어야만 했죠. 잭 부부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 불쌍한 두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매일 걱정만 됐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방송국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라이언과 라엘의 이야기가 방송에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현재는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병원과 학교를 다니게 됐다고 하는데요. 발달되고 있는 의료 기술이 남매에게 빛과 희망을 되찾아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