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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와서 계속 울기만 했던 소녀가 영어 가능해지자 꺼낸 소름돋는 ‘첫 마디’4명의 자녀를 둔 아담 부부는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분주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어떤 비극을 가져올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2015년, 제시카와 아담은 유럽 입양 컨설턴트를 통해, 우간다 출신의 5살 소녀 ‘나마타’를 입양했습니다. 유럽 입양 컨설턴트에 따르면, 나마타는 그녀의 아빠가 세상을 떠난 뒤 엄마로부터 심한 학대를 당해왔다고 전해졌는데요. 아담 부부는 나마타와 지내면서, 아이가 불안해 하고 자주 울고있는 것을 보고 확실히 아이에게 깊은 상처가 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당시, 나마타는 영어를 전혀 못했기에 그 고통을 부부와 나눌 수 없었고 부부는 그것이 더 안타깝게 느껴졌는데요. 나마타가 새로운 가정으로 이주해 온 지 6개월이 지났고, 이제 아이는 부부와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영어실력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끔찍한 비밀은 부부를 완전히 얼어붙게 만들었는데요. 나마타는 자신이 학대받는 가정에서 자란 적이 없으며, 어머니와 정말로 행복하게 살아왔노라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나마타는 자신의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으며, 자신의 어머니가 어떻게 매일 그녀를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는지도 말해주었습니다. 제시카와 아담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어떤 것인지 깨닫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어린 소녀를 데려온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제시카는 인터뷰에서 “근본적으로 우리가 아이를 입양해 왔기때문에, 어머니와 행복하게 살던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주었습니다. ”라며 미안한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나마타의 어머니도 속은 것이었는데요. 그녀는 유럽 입양 컨설턴트로부터 자신의 딸이 단순히 미국인 가족에 의해 1~ 2 년 정도 양육될 것이며,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최고의 교육을 받을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제시카와 아담은 이 거짓된 현실의 전모를 알게 된 후, 자신들이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담 부부는 나마타를 합법적으로 키울 수 있었지만, 아이를 가게에서 액세서리 구매하듯 구매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입양을 파기하게 됩니다. 감사하게도, 입양 절차는 파기됐고, 나마타는 행복하게 자신의 어머니와 재결합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전세계의 주목을 끌게 되었고, 미 국무부는 나마타의 사례처럼 거짓으로 가장된 다른 입양 사례들을 수없이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더라면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 정말 무서운데요. 감사하게도, 제시카와 아담은 좋은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많은 아이들이 가족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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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쫓아내도 한 소녀가 ‘저를 팝니다’라는 팻말을 놓고 무릎 꿇고 있을 수 밖에 없던 이유4월 22일 정오, 중국 후난성, 스프링 가든 인근에서 한 소녀가 무릎을 꿇고 있어 행인들의 호기심과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어린 소녀가 길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에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질문을 던졌는데요. 모두가 물었을 때 소녀는 자신의 이름이 ‘푸펀’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차에 치여 혼수상태에 빠진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10년 동안 몸을 팔기로 결심했다고 말하자 모두가 안타까워했습니다.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푸펀의 어머니는 가정부였습니다. 2월 17일 밤,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택시에 치였고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되자 푸펀은 거리로 나온 것이였는데요. 푸펀은 ‘어머니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을 위해 10년간 무료로 일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푸펀의 어머니의 치료 비용은 16,000위안(한화 295만원) 정도 였는데요. 어머니의 상태가 매우 위독한 만큼 치료비가 더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한편 푸펀의 아버지는 회사의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수입이 매우 적어 아내의 치료비를 지불할 수 없는 실정인데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소녀는 10년 동안 일할 수 있으며,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다며 거리에 나온 것이였습니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어머니를 구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푸펀은 길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10년 동안 자신의 몸을 팔아 달라고 간청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사연이 온라인에 게시되자 푸펀의 이야기는 입소문을 탔고 많은 사람들이 소녀의 효심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푸펀이 더이상 어머니를 위해 거리 한가운데에서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되도록 후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하는데요. 그 이후로도 푸펀의 효심에 감동한 구호단체들이 그녀를 돕게 다며 발 벗고 나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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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지 6시간 만에 ‘시신 냉장고’에서 살아난 남성이 눈을 뜨자마자 외친 한 마디62세 남성 ‘호세 히베이루’는 지난달 29일 브라질 중서부 고이아스에 있는 한 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호세 히베이루는 지난 2월부터 설암(혀에 생기는 악성종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였고 병세가 악화돼 병원을 찾았고, 결국 치료를 받던 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이후 호세 히베이루의 시신은 시신 가방에 넣어져 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는데요. 히베이루의 시신이 영안실에 있는 ‘시신 냉장고’에 들어간 지 5시간이 지난 뒤, 영안실 직원은 시신들을 확인하다 히베이루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당시 히베이루는 눈을 똑바로 뜬 채로 온 몸이 굳어가며 호흡 곤란을 겪고 있었고, 병원 측은 곧바로 그를 시신 냉장고에서 꺼낸 뒤 치료실로 옮겼습니다. 가족들 역시 깜짝 놀랐고 히베이루가 살아났다는 사실에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히베이루는 이틀 뒤 숨을 거두고 말았는데요. 현지 의료진은 그에게 잘못된 사망 선고가 내려졌고, 이후 시신 냉장고에서 겪은 저체온증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히베이루의 사망을 오진하고 사망 확인서에 사인한 해당 병원의 의사는 의사 면허가 정지됐으며, 현재 살인 미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데요. 히베이루의 가족들은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는 차가운 시신가방 안에서 무려 5시간을 보내야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현지 경찰은 “사인이 저체온증으로 확인된다면 사망 선고를 내린 의사의 책임이 커질 것”이라면서 “이 경우 기존에 살인 미수 혐의에 더해 가중처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시신 냉장고에서 깨어난 것은 호세 히베이루 뿐만이 아닌데요. 폴란드에 살고있는 25세 카밀도 비슷한 사건을 겪었습니다. 폴란드 브로츠와프주의 작은 마을에 사는 25세 남성 카밀은 술집에서 보드카를 마셨는데요. 카밀은 분위기에 취해 과음을 하게 됐고 술집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절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에게는 ‘심장마비’가 찾아왔습니다. 카밀은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심장 박동이 돌아오지 않았고 끝내 사망 선고를 받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은 ‘영안실’의 냉장고로 옮겨졌는데요. 카밀의 시신이 영안실로 옮겨지고 난 뒤 영안실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영안실 보초를 서던 경비원은 그 소리가 카밀의 시신이 들어있는 냉장고에서 들려온다는 것을 깨달았고 경비원은 손을 벌벌 떨며 카밀의 시신이 들어있는 냉장고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냉장고 안에는 카밀이 죽지 않고 살아서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는데요. 심장마비로 사망했던 카밀이 다시 살아난 것에 놀란 경비원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카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습니다. 죽었던 사람이 깨어난 이 놀라운 상황에서 카밀은 매우 다급하게 “이불을 달라. 너무 춥다”고 외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카밀은 깨어나긴 했지만 술이 깨지 않았고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영안실 냉장고’인지도 모른 채 “이불을 달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즉 자신이 무사히 집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줄 알았던 것인데요. 심장마비로 사망한 남성이 다시 살아난 놀라운 상황에 병원의 의사들이 모두 출동했고 카밀이 ‘의학적으로도’ 살아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카밀이 죽었다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는지는 규명할 수 없었는데요. 카밀은 살아난 후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고 검사가 끝난 뒤 “집에가도 되겠습니까”라며 정중한 인사를 남겼다고 합니다. 웃기게도 검사가 끝나고 나서 취한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난 그는 병원에서 나와 곧장 ‘술집’으로 향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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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으로 얼굴이 녹아내린 아빠에게 딸이 사랑한다며 ‘뽀뽀’하자 찾아온 믿기 힘든 기적화상으로 얼굴이 녹아내린 아빠에게 딸이 사랑한다며 ‘뽀뽀’하자 찾아온 믿기 힘든 기적 2008년 달라스 웨인즈는 교회에서 페인트 작업을 하던 중 고압 전선에 걸려 치명적인 감전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불에 타버린 그는 3개월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으나 더 이상 예전의 웨인즈가 아니었는데요. 왜냐하면 사고로 인해 얼굴 전체가 녹아버렸기 때문이였습니다. 눈은 물론 코도 녹아버려 더 이상 앞을 볼 수도 코로 숨을 쉴 수도 없게 되었는데요. 형체를 잃어버린 그의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눈물을 짓지 않는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웨인즈의 딸 ‘스칼렛’이었습니다. 변해버린 웨인즈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아버지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는데요. 자신의 모습을 한없이 사랑해주는 딸을 보며 생각이 깊어진 웨인즈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위험하다는 ‘얼굴이식 수술’을 받기로 결심합니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수술이었어요. 두 번 다시는 딸을 못 만날 수도 있었죠.” “하지만 딸이 학교에 입학했을 때 제 모습으로 인해 친구들에게 놀림 당할 것을 생각하니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수술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게 시작된 얼굴 이식 수술, 30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참여한 이 수술은 무려 17시간이나 진행되었습니다. 긴 시간의 대수술이 끝나고 깨어난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는데요.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펑펑 울었습니다. 2년 반만에 처음으로 코로 숨을 쉬는 순간이었죠.” “음식 냄새가 코 끝으로 타고 흘러들어오더라구요. 숨을 쉬고,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랑스러운 딸 스칼렛에게 제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얼굴 이식 수술을 마치고 딸을 만나기 직전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얼굴이 녹아버린 채로 평생을 살 수도 있었어요. 딸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앞을 보지는 못했지만 수술 후에 처음 만나게 될 딸 생각에 그는 가슴이 뛰었는데요. “수술을 한 이후에 처음으로 딸을 만나게 될 텐데 기분이 어떠세요?” “안아준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냥 꼭 안아주고 싶어요. 저는 저의 현재 삶에 만족합니다.” “사고이후에 너무나도 좋은 일들이 일어났거든요. 비록 얼굴 형체는 잃었지만, 가족들이 더 돈독해졌고, 저 스스로 휠씬 성장했죠.” “지금 저는 더 멋진 아빠가 되었습니다.” 치명적인 삶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삶이 더 행복하다는 달라스 웨인즈, 그 어떤 역경에도 긍정적인 태도를 지닌 웨인즈와 자신의 아버지를 한 없이 사랑하는 딸 스칼렛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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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하반신을 잃고 ‘농구공을 이식받은 소녀’에게 20년 뒤 일어난 믿기 힘든 기적지난 2000년 중국 윈남성 무징, 당시 4살이었던 ‘첸 홍얀’은 안타까운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홍얀의 가족은 가난했기에 그녀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그래서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농구공은 그녀의 발이 됐습니다. 소녀는 기자들 앞에서 `묘기를 부릴 수 있다`고 말하며 물구나무서기를 했는데요. 기자는 “소녀의 웃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2005년 인민일보를 통해 전 세계에 전해진 홍얀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말문이 막히고 눈물이 날 정도로 애처로웠습니다. 그녀는 양손에 나무로 만든 패드를 쥐고 바닥을 쓸듯이 기어 다녔는데요. 인민일보는 “아이는 가녀린 팔로 몸을 지탱해야 해서 ‘늘 팔이 저리다’고 말했다”며 “균형을 잡지 못해 넘어져 얼굴 등을 다치기 일쑤였다”고 전했습니다. 홍얀이 “너무 아프고 힘들다”고 말한 건 당연했는데요. 이런 안타까운 사연은 중국 전역과 해외주요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됐고 그 후 홍얀은 많은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농구공을 대신해 의족을 달았고 홍얀은 난생처음 학교에 다니게 됐습니다. 하지만 2011년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홍얀가족은 딸을 공부시킬 만큼 상황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없었는데요. 학교에서 공부하길 바라고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안타까운 현실에도 홍얀은 낙심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차이나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윈난성 수영팀에 입단권유를 받게 된 그녀는 “물에 떠 있을 방법이 없는 것 같았고 항상 숨 막히는 기분”이라고 말했지만 인생의 첫 도전으로 수영을 선택했는데요. 다리가 없었던 홍얀에게 수영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녀는 물에 뜰 수 없었고 주변의 도움 없이 물에서 나오기조차 힘들었는데요. 하지만 그녀는 포기 없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 전국대회 3위를 시작으로 메달사냥을 시작했고 2009년에는 중국 국립 장애인 올림픽 수영대회에서 2개의 은메달을 따 현지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홍얀은 “집에 오면 피곤해서 바로 잠들었을 정도”라고 말했는데요. 처음 “승부에는 욕심이 없었다“고 말한 그녀는 여세를 이어가 이듬해인 2010년 3개의 매달(은, 동)과 공인기록을 세우며 수영선수로서의 입지를 다졌고 장애인 올림픽 예선전 자격이 부여됐습니다. 2011년 장애인 올림픽 예선전, 농구공 발을 만들어준 홍얀의 할아버지가 숨을 거뒀습니다. 또한 그녀도 아쉽게 예선에서 탈락하게 됐는데요. 낙심한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고향으로 내려가 잠시 공부와 운동을 멈췄습니다. 그녀는 기자들에게 “경쟁이 무엇인지 알게 됐을 때 너무 많은 중압감을 받았고 자신에게 (스스로)압력을 준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는데요. 잠시 휴식을 취하며 재기를 준비한 홍얀, 그녀는 2014년 9월 윈난성 지방 장애인 올림픽 100m 평형에서 우승하며 ‘화려한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외신은 “그녀의 놀라운 힘과 가득한 에너지는 어려웠던 어린 시절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며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는데요. 올림픽 예선에 탈락한 홍얀은 “집에 돌아갔을 때 동생과 가족들은 나를 영웅처럼 맞이했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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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여성의 얼굴을 통째로 이식받게 된 18살 소녀 ㄷㄷ2018년 세계적인 명성의 다큐멘터리 잡지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한 여인이 실립니다. 아름다운 드레스와 대비되는 다소 어색한 얼굴 그런데 불과 수 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얼굴은 이토록 눈부신 아름다움을 자랑했다고 하는데요. 단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얼굴의 반을 잃고 평생을 살아가게 됐다는 이 여성, 대체 그녀의 사연은 무엇일까요. 2014년 3월 미국의 10대 소녀 ‘케이티 스터블필드’가 남자친구와 막 이별을 합니다.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와 다정히 문자를 나눈 것에 대해 따져 물은 게 화근이었는데요. 냉정하게도 그 자리에서 이별을 고한 케이티는 그렇게 뒤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 졸업반이 된 그녀는 어린 나이였지만 이별의 아픔에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요. 더군다나 가족들의 잦은 이사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고질적인 위장 질환으로 맹장과 쓸개까지 없앤 상태였기에 건강까지 매우 좋지 못했죠. 그런데 이런 악재들이 겹치던 중 그녀는 그만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품고 맙니다. 미시시피주에 있는 친오빠 집 화장실에서 망설임 없이 스스로를 해하고 만 것인데요. 심각할 정도로 타격을 입은 그녀, 다행히도 오빠 ‘로버트 스터블필드’가 케이티를 일찍 발견했고 그녀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채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빠 로버트는 소리를 듣고 달려갔는데 동생 얼굴이 사라지고 없었는데요. 오빠 로버트의 증언대로 케이티의 얼굴은 상당히 망가져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기관에 제 모양을 잃어버릴 정도로 손상의 정도가 매우 심각했는데요. 결국 그녀는 의사들에게 의료 행위를 받았습니다. 얼굴 전체를 잃는 대가를 치러야 했고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대대적인 의료 행위를 무려 스무 차례나 넘게 견뎌야 했죠. 그렇게 지옥 같던 3년의 시간이 흐른 2017년 5월, 이제 두 번째 인생을 살 기회를 얻게 됩니다. 케이티에게 기적 같은 희망이 찾아온 것인데요. 바로 한 가족이 안면 기증 의사를 밝힌 것입니다. 기증자는 과도한 약물 복용으로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해 한 여성이었습니다. 케이티에게 제2의 삶을 살 기회가 기적처럼 주어진 것인데요. 그녀를 위해 모인 의사만 11명, 게다가 저명한 3d 프린팅 전문가들까지 붙었습니다. 사실 안면 이식을 할 때 3d 프린팅은 아주 중요한 기술인데요. 3d 프린팅은 환자의 결손 부위에 딱 알맞은 고정밀 보형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CT를 이용해 얼굴 형태를 3차원으로 측정한 뒤 플라스틱과 티타늄을 재료로 얼굴 뼈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특히나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수술의 결과까지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어 최근 이 기술은 관련 업계에서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편 모든 준비를 완료한 케이티는 기증자의 얼굴에서 떼어내 피부 뼈 신경 혈관을 이식받았는데요. 특히 얼굴 내부에 있는 여러 기관이 흘러내리지 않게 막는 건 몹시 어려운 작업이었기 의사들은 아주 심혈을 기울였죠. 그렇게 무려 31시간에 걸친 대대적인 의료 행위가 끝나는데요.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케이티는 자신의 얼굴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됐습니다. 비록 그녀는 거부 반응을 줄여주는 면역 억제제를 투여받아야 했고 1년 동안 추가적인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의료 행위를 받았는데요. 드디어 혼자 힘으로 씹고 삼키고 숨 쉴 수 있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완벽하지 않은 얼굴일지라도 케이티는 어렵게 얻은 자신의 얼굴에 크게 만족했습니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케이티는 “자신의 인생을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마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일련의 사건으로 큰 깨달음을 얻은 케이티, 그런데 그녀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녀의 특별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도와줬어요. 이젠 제가 도와줄 차례라고 생각해요.” 최근 케이티는 자신과 같이 어려움을 겪는 10대들을 돕기 위해 온라인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등 상담사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요. 위태롭고 불안한 청소년들이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녀의 주치의였던 브라이언 게스트먼은 케이티가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는데요. 그는 그녀가 역경을 견뎌내는 법이나 잘못된 결정이 초래하는 위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죠. “삶은 소중한 선물이에요.” 과거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지만 많은 이의 도움으로 제2의 인생을 얻게 된 케이티, 더 이상 절망이 아닌 희망을 노래하는 그녀의 얼굴이 지금 이 순간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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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성이 가족들까지 속이면서 ‘가짜 장례식’을 열어 죽은 척 했던 황당한 이유지난 16일 인도네시아 서부 자바주 보고르시 란카붕구르에서 장례식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는 사건이 발생하고 마는데요. 숨을 거두어서 관에 누워있던 우리프 사푸트라(Urip Saputra)라는 40세 남성이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사푸트라의 집에서 열린 장례식에 많은 친척과 친구들이 참석하면서 발생했는데요. 사푸트라의 친척과 친구들은 세상을 떠난 사푸트라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열린 관 주위로 모여 그의 얼굴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사푸트라와 가장 친했던 친척은 사푸트라가 입은 셔츠가 흐트러진 것을 보고 이를 정갈하게 펴주기 위해 그의 시신을 향해 몸을 구부렸는데요. 이때 사푸트라의 폐가 위로 올라갔다 내려오며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랐고, “사푸트라가 되살아났다!” 라고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사푸트라는 곧바로 병원에 옮겨졌으며 의사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며 놀라워했습니다. 이 사건은 인도네시아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경찰은 그들 부부에게서 수상함을 느끼고 수사에 나섰는데요. 그리고 황당한 진실을 밝혀냈습니다. 사푸트라는 애초에 죽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였는데요. 조사결과 그는 1억 2천만원이라는 막대한 빚을 지고 있었고 채권자들이 쫓기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이에 사푸트라와 그의 아내는 빚을 독촉을 피하고자 가짜 죽음을 계획했습니다. 사푸트라와 아내는 빈 관을 구입한 다음 이를 수송하기 위해 구급차를 불렀는데요. 당시 사푸트라를 태운 구급차 기사의 말에 따르면 고속도로 휴게소에 정차했을 때 사푸트라가 갑자기 사라지고 그의 아내만 남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푸트라의 아내는 남편이 스마랑시에서 보고르시로 오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사건을 조사하던 중 부부가 스마랑시에서 보고르시로 왔다는 정보가 없자 그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사푸트라는 자신의 가짜 죽음을 더 사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특수 약물까지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관에 오래 누워있었던 사푸트라는 실제로 산소 부족으로 숨질 뻔했으나 다행히 제때 병원으로 이송돼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지 경찰은 사푸트라가 완전히 회복되면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사기 혐의로 기소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의 사기 행각을 도운 아내 역시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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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소녀’가 62살 노인과의 결혼식에서 기뻐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던 이유어린 소녀는 자신의 11번째 생일에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자신의 생일에 11세 소녀 조시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60대 노인의 손을 붙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섰습니다. 조시는 식장에 들어가면서부터 눈물을 펑펑 흘렸고 소녀의 손을 잡은 노인은 담담히 눈물을 흘리는 소녀를 꼭 안아줬는데요. 얼핏 보면 일부 문화권에서 남아있는 ‘조혼’ 풍습을 보여주는 이 풍경을 보고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결혼식’이라고 불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과연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요? 조시와 노인은 사실 부녀지간이었습니다. 60대 노인은 조시의 아버지인 ‘짐’으로, 결혼식을 올리기 5개월 전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암이 심각하게 진행된 상태라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짐에게는 늦은 나이에 어렵게 갖게 된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어린 딸 조시가 있었는데요. 조시는 평소 ‘아버지와 결혼할 것’ 이라고 이야기 하곤 했습니다. “난 아빠랑 결혼할래.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멋지잖아”라고 말하는 조시에게 아버지인 짐은 “아빠는 조시랑 결혼할 수 없어. 아빠는 조시의 손을 잡고 신랑에게 데려다주는 사람이거든”이라고 말하며 기뻐했었는데요. 그리고는 조시에게 “대신 결혼식에서 아빠가 멋있게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줄게” 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시한부 판정을 받은 짐은 결국 딸의 결혼식을 지켜볼 수 없게 됐습니다. 이에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 딸의 결혼식을 미리 올려주려 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그 역시 여의치 않았는데요. 짐과 조시의 안타까운 사연에 마을 사람들은 ‘특별한 결혼식’을 마련했습니다. 결혼식장, 웨딩드레스, 메이크업, 꽃 등 결혼식 준비에 필요한 비용을 모두 대신 지불하고 두 사람의 특별한 결혼식을 열어주기로 한 것인데요. 이쁘게 웨딩드레스를 입은 조시는 남들보다 이르게 결혼식장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서게 됐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으며 조시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결혼식 사진을 촬영한 작가 란지 빌라토르는 “오늘의 이 결혼식 사진이 먼 훗날 조시의 진짜 결혼식에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해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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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되겠다던 18살 딸의 ‘뇌사판정’에 부모가 딸을 위해 내린 마지막 선택18살 소녀가 6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마지막 여행을 떠났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소녀 ‘루샤’는 다른 이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하늘의 별이 되었는데요. 남들을 돕기 위해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녀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소원을 이루게 됐습니다. 지난달 29일, 중국 장쑤성 출신의 18세 소녀 루샤(Lu Xiya)는 한밤중 전기 자전거를 타다 갑자기 두통을 느끼고 길가의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총력을 기울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고 12일 만에 뇌사 상태에 빠졌습니다. 루샤의 부모는 하늘이 무너질 듯한 슬픔을 느꼈지만, 딸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루샤의 부모는 딸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장기기증에 어렵게 동의했는데요. 그녀의 폐, 간, 각막 등은 고통받고 있는 6명에게 기증됐습니다. 루샤의 각막을 이식받은 환자는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고 폐, 간 이식 환자는 서서히 회복 중이라고 알려졌는데요. 루샤의 장기기증 결정에 이식받은 환자의 가족뿐만 아니라 의료진들까지도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고 합니다. 장기 기증을 위해 수술 침대에 놓인 루샤의 주위로 의료진들이 마지막 인사를 올리는 모습도 전해졌습니다. 루샤의 마지막 순간이자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될 순간을 앞두고 의료진들은 경외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렇게 루샤는 세상을 떠났지만 죽어서도 세상 곳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됐습니다. 많은 생명을 살리고 하늘의 별이 된 루샤가 천국에서는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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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죽기 직전’ 사형수가 요청한 충격적인 마지막 식사미국에서는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사형을 선고받은 후 판사가 배심원에게 가석방 가능성 없이 사형 또는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데요. 그런 다음 사형 선고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배심원에게 달려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만장일치의 결정이어야 합니다. 배심원단이 사형에 동의하면 피고인은 항소 및 기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사형수로 남게 되며 이 절차는 몇 년 동안 계속될 수 있는데요. 그래서 사형집행 날짜가 확정되면 사형수는 처형에 앞서 ‘관례적인 의례’를 치러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마지막 식사’입니다. 여러 나라에는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전통이 있습니다. 역사적인 프랑스에서 처형되기 몇 분 전에 사형수에게 공식적인 마지막 식사가 아닌 “럼주 한 잔”이 제공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국가에서 수감자는 합당한 범위 내에서 마지막 식사를 선택할 수 있는데요. 오늘은 그 중 사형수들의 선택한 특이한 ‘마지막 식사’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1. 빅터 해리 페구어 빅터는 자신의 범죄로 인해 연방 법원에서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유죄 판결을 받아 교수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빅터는 억울하다고 항소했지만 거부되었는데요. 그 당시에는 대통령만이 사형 선고를 감형할 수 있어 왠만해서는 감형받기가 힘들었습니다. 사형 반대론자였던 당시 아이오와 주지사는 빅터의 변호와 함께 케네디 대통령에게 연락하여 빅터에 대한 사면을 요청했는데요. 그래서 사형집행 날짜가 확정되면 사형수는 처형에 앞서 ‘관례적인 의례’를 치러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마지막 식사’입니다. 여러 나라에는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전통이 있습니다. 역사적인 프랑스에서 처형되기 몇 분 전에 사형수에게 공식적인 마지막 식사가 아닌 “럼주 한 잔”이 제공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국가에서 수감자는 합당한 범위 내에서 마지막 식사를 선택할 수 있는데요. 오늘은 그 중 사형수들의 선택한 특이한 ‘마지막 식사’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1. 빅터 해리 페구어 빅터는 자신의 범죄로 인해 연방 법원에서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유죄 판결을 받아 교수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빅터는 억울하다고 항소했지만 거부되었는데요. 그 당시에는 대통령만이 사형 선고를 감형할 수 있어 왠만해서는 감형받기가 힘들었습니다. 사형 반대론자였던 당시 아이오와 주지사는 빅터의 변호와 함께 케네디 대통령에게 연락하여 빅터에 대한 사면을 요청했는데요. 그러나 케네디 대통령은 빅터가 저지른 범죄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여 요청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빅터는 28세의 나이에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식사로 씨가 들어 있는 올리브 한 개를 요청했는데요. 왜냐하면 자기 몸 안에서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나무가 자라길 원해서였다고 합니다. 2. 티모시 맥베이 티모시는 168명의 사망자와 680명의 부상자를 낸 오클라호마 시 폭탄 테러의 배후였습니다. 오클라호마 시 폭탄 테러는 ‘9.11 테러’ 이전에 미국 내에서 가장 사망자가 많았던 테러였으며 지금까지 미국에서 가장 치명적인 테러로 남아 있습니다. 티모시는 168건의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33세의 나이에 인디애나에서 독극물 주사로 사형을 당했는데요. 티모시는 마지막 식사로 ‘민트 초코칩 아이스크림’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3. 앙헬 니에베스 디아즈 앙헬 니에베스 디아즈는 55세의 나이에 플로리다에서 독극물 주사로 사망했는데요. 그는 살인, 납치, 무장 강도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죽을 때까지 결백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디아즈는 결국 마지막 식사를 거부했고, 그래서 일반 교도소 식사를 제공받았지만 그 식사 마저도 죽기 전까지 거부했다고 합니다. 4. 스티븐 마이클 우즈 주니어 우즈는 마약상이였던 젊은 남성과 그의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04년 우즈는 죄수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었는데요. 우즈는 사형수 처우에 반대하는 폴룬스키의 단식투쟁에 참여했습니다. 우즈의 사건과 처벌의 공정성은 미국의 철학자, 인지 과학자, 역사가이자 정치 운동가와 인권 단체로부터 높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우즈의 형사 사건은 국내외적으로 보고되었는데요. 그의 항소 신청은 2011년 9월 2일에 최종적으로 거부되었고, 그는 11일 후 독극물 주사로 사형당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다음과 같은 말도 안 되는 마지막 식사 요청을 했는데요. 그는 베이컨 2 파운드, 4인용 대형피자, 닭 가슴살 튀김 4개, 마운틴 듀, 펩시, 스위트티 2잔, 아이스크림 2파인트, 치킨 프라이드 스테이크 5개, 베이컨이 들어간 햄버거 2개, 감자튀김 12개와 마늘빵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5. 존 웨인 게이시 연쇄 살인마 강간과 33건의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일리노이주에서 52세의 나이에 독극물 주사로 사형당했는데요. 게이시는 마지막 식사로 새우튀김 12개, 오리지널 레시피 KFC 한 통, 감자튀김, 딸기 15개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유죄 판결을 받기 전에 게이시는 3개의 KFC 매장을 관리했다는 것인데요. 하루종일 치킨냄새를 맡았는데도 불구하고 죽는 순간까지도 치킨은 끊을 수 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6. 더그 스페트너 더그 스테프너는 이웃집 소녀에게 몹쓸 짓을 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는 지난 2008년 텍사스 주에 있는 한 교도소에 수감됐는데 사형일이 다가와 사형 전 마지막 식사로 무엇을 먹고 싶냐는 교도관의 물음에 더그는 당당하게 8살 소년이 먹고 싶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교도소 측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일반 음식으로 그의 마지막 식사를 대체하자 분노한 더그는 교도소 내 집기를 부수며 마지막 식사를 거부했다는데요. 일주일 뒤 그는 교도소에서 심장을 멈추게 하는 약물을 주입받아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7. 제임스 에드워드 스미스 제임스 에드워드 스미스는 사형 판결을 받은 사람 중 지금까지 기록된 것 중 가장 기괴한 마지막 식사 요청을 하였는데요. 그는 1983년 텍사스에서 무장 강도 사건으로 한 남자를 총으로 쏴 죽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1990년에 간부가 마지막 식사로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었을 때 ‘흙덩이’라고 답했는데요. 놀랍게도 그는 마지막 식사로 흙덩이를 받자마자 주저하지 않고 순식간에 먹어치웠다고 합니다.